측은한 마음을 추격하는 카메라
측은한 마음을 추격하는 카메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8.03.0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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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해경의 심야영화를 보다]<추격자>

영화 : 추격자
감독 : 나홍진
주연 : 김윤석, 하정우

▲ 추격자 포스터.
맹자는 사람의 조건으로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마음을 말했다. 불쌍히 여기는, 부끄러워하는, 겸손한, 분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인간이란 말이다. 네 가지 모두 관계적이다. 타인들과의 관계에 주목하고, 그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인간의 조건으로 보는 시각은 참신하다.

나를 위해 남을 딛고 서야 성공이라 말하는 약육강식의 현재에 반드시 되새김해야 할 큰 가치이기에 그렇다. 반대로 인간관계를 떠나 기준을 설정하고, 거기에 인간다움을 맞추는 방식은 위험하다. 절대의 기준에 나의 삶을 맞추기에 남이 개입할 여지도, 남을 생각해야할 이유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공존과 평화보다는 경쟁과 투쟁이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커진다.

조금깊이 뜯어보면 측은지심은 관계적이면서 다른 세 가지 것들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수오, 사양, 시비가 내 안으로 향하는 성격이 강한 반면, 측은은 혜택이 남에게 돌아감을  암시하고 있기에 그렇다. 내 마음속의 작용이 남을 향해있는 것이다. 맹자는 측은지심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했다.

<추격자>가 관객동원 200만을 돌파했단다. 비수기에 특별히 눈을 끄는 영화가 없어서 선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2시간 안팎의 런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은 재미가 있다는 게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재미를 넘어선 곳에서 의지와 마음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였다.

나홍진 감독은 장편영화가 처음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초심자의 과잉이나 치기어림을 발견할 수 없다. 처음부터 적당히 제작자의 눈치를 보거나 안전(?)하게 관객들에게 안착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신인감독이 원하는 바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나홍진 감독은  그것을 끝까지 지켜냈다는 것이다. 절제와 소신의 의지는 시너지효과로 나타났다.

<타짜>(최동훈, 2006)의 아귀로 알려진 김윤석의 논리적인 행동과 <시간>(김기덕, 2006)의 지우를 연기했던 하정우의 무덤덤한 감성은 부딪히며 질기면서도 끈끈한 화면을 만들어냈다.

영화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여 잡는 스릴러물이다. 보도방을 운영하며 여자들의 화대를 뜯어먹고 사는 전직경찰 중호(김윤석 분)는 쓰레기다. 일 나간 여자들이 하나둘 행방불명되자 그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연쇄살인자 영민(하정우 분)과 대결한다. 영민은 마음이 없는 순수한(?) 살인자다.

그에겐 도덕, 양심은 없고 살인은 때가 되면 끼니를 때우듯 해치우는 일상이다. 경제적인 동기(여자들은 중호에게 돈이다)에서 출발한 중호는 시간이 흐르며 마음이 생긴다. 그 마음의 중심이 측은이다. 관객들은 중호에게서 점점 인간의 모습을 본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마음이 없는 영민과의 대결은 불가피해진다. 중호의 마음이 쌓여가며 영화의 긴장감도 쌓여간다. 그리고 제거해야 하는 마음(중호)과 제거되지 않으려는 본능(영민)의 대결이 펼쳐진다.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중호나 영민이나 결국은 똑같은 인간임을 보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측은의 입장에서 보면 중호는 인간이고, 영민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와 똑같은 식으로 대결을 했다고 해서 인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영화가 흐르며 중호에게는 싸워야할 이유, 즉 측은이 쌓여갔다는 것이 중요한데 중호에게 그 이유를 부여한 감독이 영화 내내 이유가 없는 영민을 같은 부류로 취급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감독이 인간의 조건을 관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존재적으로 이해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간다움에 대해서 관계적으로 생각할 시간을 준 영화에는 전혀 불만이 없다. 관계를 끈끈하게 그려내면서도, 관계적으로 인간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감독의 인터뷰만이 유일한 불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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