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와 가계 내 생산
연말연시와 가계 내 생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12.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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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형광석(목포과학대학 케어복지학과 교수)

집에서 하루 몇 끼 밥을 먹는가. 한 끼도 먹지 못한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연말이다. 송년회로 시끌벅적하다. 이름께나 난 식당은 사람들로 붐빈다. 모임이 많은 인사는 하루 세끼를 집 밖에서 먹는다. 아침 일찍 만나서 공부하고 흩어지는 송년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렇다. 매년 이맘때쯤에 벌어지는 일이다.

얼마 전 초등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식당엘 갔다. 송년 모임을 위해서다. 상당히 큰 식당인데도 앉을 방이 없을 정도다. 밥값이 제법 비쌌지만, 손님은 계속 왔다. 주인이 요령껏 눈치를 한다. 부랴부랴 먹고 얼른 일어섰다. 당연히 음식 맛을 음미하지도 못했다.

오늘날은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소풍갈 때도  엄마가 싸주는 점심은 가까운 김밥 전문점에서 산  김밥이다. 일상이 정신 나갈 정도로 바쁘기에, 대체로 보통 가정에서는  도시락과 김밥이라는 가정용 재화를 만들지 않는다. 이제는 만들 줄 모르는 단계에 접어들었는지 모른다. 심지어 밥조차 짓지 못할지도 모른다. 공장에서 밥이 대량생산되어 판매되기 때문이다. 당연지사로, 한국의 가정 식탁을 대표하는 재화인 김치도 담지 못하는 가정이 점점 늘어난다. 

집을 나오면 때마다 으레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된다. 집을 떠나 외지에서 생활하는 대학생이나 직장인은 삼백 육십오일 내내 식당밥만 먹는다. 민감한 사람은 일찍 식당의 식탁에서 묘한 역겨운 냄새를 맡는다. 느끼한 입맛이다. 식당마다 자연 조미료를 만들어 사용한다고 하지만, 그러한 기분은 정도 차이일 뿐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이 식당 분위기에 물려도 대안을 찾지 못한다.

식당 사업은 전문업종이 됐다. 식당을 운영했던 주부 학생은 말한다. 무 하나로도 열 가지 음식을 만들 줄 알고 식당을 해야 성공한다. 일주일을 한 주기로 하되, 매일 식단을 달리해야 한다. 식탁에 차린 음식의 색깔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 푸른 색깔이 많으면 칙칙한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식욕이 생기지 않는다. 노란색과 빨강색을 띠는 음식을 만들어서 배치해야 한다. 전문 식당은 점점 많이 늘어난다.

아침 식사는 가볍게 빵이나 우유로 때우는 사람이 많다. 점심과 저녁은 주로 식당에서 한다. 집은 그저 잠만 자는 곳이 돼 버렸다. 현대 생활이 바쁘다 보니 집에서 식사 준비를 할 만한 시간이 없다. 식사 준비를 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의 기회비용이 점차 커졌다. 요리를 배우려면 시간과 돈과 정력이 많이 소모된다. 식당에서 만들어진 식사 서비스를 활용함이 더 저렴하다.

가계에서 가족 구성원이 소비하는 재화를 만들려면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다. 가계 내에서 재화를 생산하는 과정은 노동집약적이다. 한편 사회가 발전하면서 시장노동의 가치가 커졌다. 그러기에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데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질적인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가계는 일반적으로 단순한 소비 주체로 간주된다. 가계는 생산 주체이기도 한다. 가계는 가족 구성원이 필요로 하는 재화를 직접 생산하는 주체이다. 가정주부가  식사라는 재화를 생산하려면, 구입한 쌀, 채소, 각종 양념과 같은 원재료와 조리 도구에 가사노동을 투입해야 한다. 가사노동을 하면, 그 만큼 돈벌이도 못하고, 일터에서 지친 몸에 피로만 겹친다. 

이제 전업주부의 시장경제활동은 필수가 됐다. 가구주만의 수입으로 살아가기는 힘들어서이다. 경제활동 욕구가 강해서이다. 전업주부도 노동시장에 진출한다. 파트타임부터 시작한다.  가사에만 매달리기는 힘들어진다. 결국 가사노동의 기회비용과 가치는 커져만 간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번 연말연시에는 날을 잡아서 온 가족이 모여서 노동집약적인 음식을 만들어 보자. 노동의 기쁨과 음식 만들기의 즐거움을 가족이 향수할 좋은 시간을 할애해보자. 가족의 하루하루 잘 삶(well-being)은 잘 끝내기(well-ending)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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