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누구의 편인가?
법은 누구의 편인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11.1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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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대한민국]박찬동(장애인부모연대 사무국장)

청각장애 학생에 대한 성폭력 사건을 시작으로 장애학생들의 교육권, 생활시설에서의 인권침해 등 다양한 문제를 노출했던 인화학교 사태가 성폭력 가해자들의 재판과 관련하여 새로운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성폭력범 재판을 이야기하기 전에 인화학교 사태와 관련된 법적 조치 및 처벌 상황과 이와 관련된 인화학교와 법인의 대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미성년자에 고소기간 운운

먼저, 인화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성폭력 가해자 2명이 형사 처벌되었고, △인화학교 운영법인의 임원 6명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해임 권고를 받아들인 광주시와 광산구청은 임원해임을 명령했으며, △사건을 조사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폭력 가해자 및 관련자 8명을 추가 고발했고, 그 결과 현재 성폭력 가해자 5명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법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인화학교와 법인은 △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인화학교 동문?학부모?교사 등 14명과 인화학교 학생 16명을 고소하고, △대책위 활동에 참여한 교사와 생활재활교사 징계 또는 해고했으며, △성폭력 가해자 및 사건 관련 교직원을 복직시켰다.

이처럼 인화학교와 법인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자 인화학교 학생 46명 중 6명 자퇴를 포함하여 10여명이 전학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월 2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고발한 성폭력 가해자 5명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다. 이미 검사 구형이 이뤄진 상태라 선고가 예상되었지만 재판부는 사건과 관련하여 ‘고소권자의 자격유무’, ‘고소기간의 도과 여부’를 이유로 재판을 연기하였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연락이 되질 않아 미성년인 피해학생을 돌봐줄 사람이 숙부 외에는 없었던 A양, 성폭행을 당하고도 누구에게 말 한마디 하지 못하며 혼자서 그 고통을 참아내야 했던 B양, 청각장애와 함께 지적장애를 갖고 있어 본인의 의사표시조차 어려운 C양.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장애를 갖고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어린 학생들에게 재판부는 ‘친고죄이니 범인을 알았을 때 신고했어야 한다’, ‘신고기간은 2년을 넘을 수 없다’, ‘사력을 다해 저항했어야 했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 말이 내 귀엔 ‘그냥 참고 살아라’고 들린다. 그리고 미성년자들에게 고소기간 운운하는 것은 과거 개정된 성폭력특별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데 재판의 마무리 시점에 이 문제를 들춰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혼란스럽다.

비장애인 중심의 법 적용

성폭력범죄에 대해서 친고죄 적용과 공소시효 및 고소기간을 폐지하라는 요구는 여성단체 및 관련단체에서 오래 전부터 재기했던 문제이며, ‘항거불능’의 문제 등을 포함한 성폭력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어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법사위에 계류 중인 개정안이 11월 25일 국회 일정이 종료되기 전에 다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인화학교 사태 해결의 열쇠는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에게로 돌아갔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로 인해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고, 적절한 대응도 할 수 없었던 그들에게 남성중심?비장애인중심의 법 적용으로 가해자의 처벌을 막아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지 않아야 한다. 재판부에서는 청각장애인의 특수성을 고려하고, 가해행위에 초점을 맞춘 처벌을 내려주길 바란다. ‘법은 누구의 편인가?’란 물음에 ‘상식의 편이며, 정의의 편이며, 시민의 편이다’라고 답할 수 있는 판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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