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노인과 시내버스
장애인과 노인과 시내버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10.2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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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형광석(목포과학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휠체어 장애인이 휠체어에 탄 채 자유롭게 시내버스에 승차한다. 어둑어둑한 저녁시간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버스에 오르신다.

어느 나라, 어떤 도시에서 보는 모습일까. 바로 요 며칠 사이에 광주광역시 시내버스에서 본 광경이다.
초조녁인데도 날씨가 흐려서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다. 친구 만나러 가는 길에 시내버스를 탔다. 서너 정거장을 갔다. 약간 텁수룩한 남자 노인 한 분이 정류장에서 버스 앞문을 통해 올라오셨다. 균형 감각이 떨어져 보였다. 약간 비틀비틀하셨다.  서거나 걷는 모습이 불안하다. 의자에 앉으려고 애써도 잘 안돼 보인다. 버스 운전자가 얼마나 걱정이 됐던지, 노인이 제대로 앉은 후에야 출발했다. 두 셋 정거장이 지나자, 노인이 의자에서 일어나 통로로 나와서 서성인다. 보기에 정말 안타까웠다. 운전자가 차를 서서히 길가로 몰아서 멈춰 세웠다. 다시 노인이 의자에 앉고 나서야 출발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면서 노인의 안전이 걱정됐다. 시골에 계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 노인이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버스 안에서야 운전자가 잘 살펴주겠지만, 차에서 내린 후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어두운 밤에 자기 집을 잘 찾아가실지 궁금했다.

문제는 앞으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노인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점이다.

가을 햇살이 따사로운 10월 어느 날 오후 2시경에 시내버스 정류장에 나갔다. 버스가 오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말이 매우 어눌한 장애인이 휠체어에 탄 채 도우미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순간, 휠체어 장애인이 어떻게 버스에 오를까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마침내 버스가 왔다. 버스 운전자가 얼른 휠체어 장애인을 알아보고, ‘뒤로 타시게 할 테니까 조금 기다리세요.’ 하면서 운전석에서 내린다. 대개 버스 앞문에서 승차하고 뒷문으로 내리지만, 휠체어 장애인은 너비가 큰 뒷문으로 타고 내린다. 운전자는 도우미와 함께 휠체어 장애인을 버스에 태우고 나서 휠체어가 흔들리지 않도록 잠금장치의 홈에 넣어 안전조치를 했다. 운전자는 운전석으로 돌아가면서 “이 차를 놓쳤으면, 앞으로 네 번이나 버스를 보내고 다섯 번째 오는 버스를 탈 뻔 하셨네요.“라고 말했다. 휠체어 장애인이 휠체어를 접지 않은 채  바로 오를 수 있는 버스가 많지 않다는 말로 이해됐다. 차는 출발했다. 휠체어 장애인이 도우미와 함께 오순도순 재밌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운전자가 휠체어 장애인을 직접 태우는 모습은 보기에 좋았다.  출퇴근시간이 아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나, 휠체어 장애인이 승차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시간이 지체됐지만 이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표정을 짓는 승객은 아무도 없었다. 매우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출퇴근시간을 피해서 외출하는 휠체어 장애인의 현명함도 높이 살만했다. 정말 장애인을 이해하는 풍토가 탄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나라의 사회복지수준은 중증 장애인의 이동 가능한 범위로 평가된다. 말하자면, 중증 장애인이 고작 안방에서나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한다면, 그 나라의 사회복지 수준은 안방 밖에 되지 않는다. 휠체어 장애인이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이동할 정도이니까, 광주의 사회복지는 적어도 안방 수준은 면했다. 중증 장애인이, 누구의 도움을 받든, 어떻게 해서 가든, 무등산 정상에 오른다면, 광주광역시의 사회복지 수준은 무등산 높이가 된다. 그런 날이 이른 시일 내에 오기를 기대한다.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는 장애인이 많다. 큰 회사를 잘 경영하여 일자리를 제공하는 시각장애인인 친구는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받는다. 역시 백발이 성성하지만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고령의 노인이 점점 늘어난다. 중증 장애인과 노인이 맘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는 자유를 누려야 할 사회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 고장 주민의 사회복지 수준이 무등산 높이가 되는 날이 앞당겨지도록 노력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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