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에 생각나는 것들
한가위에 생각나는 것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9.2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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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 눈]곽규호 편집장

학력을 거짓으로 밝힌 한 여인과, 고위 정치인과의 스캔들로 온 나가 시끄럽다. 국민들은  누구누구와는 관련이 있을까 없을까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언론은 벌거벗은 그의 사진을 싣고 이를 확대재생산면서 사건의 본질을 노란색으로 흐리는 불안한 시선이 한반도 남쪽을 훑어내리고 있다. 이 언론이 제역할을 했다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스캔들과 대권 경쟁 보도 사이에 관심을 끌지 못한 소식들이 있다.

지난 19일 서울의료원에서는 한 자살 탈북여성의 쓸쓸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4번이나 북송당한 끝에 한국에 입국한 이 여인은 올해 초 한국으로 들어와 주민등록번호를 발급받았지만 탈북자에게 부여되는 고유번호 때문에 중국으로의 재입국이 거부됐다, 이로인해 중국에 있는 자녀를 만나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36살의 이 여인은 북한을 벗어나 얼마나 중국을 전전하며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을까.

스캔들의 양극화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3월8일 광주시청에서 시위하던 청소용역 근로자들은 지금도 날마다 시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선다. 그나마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명령이 내려져 청사 가까이 접근하지도 못한다. 지난 여름의 그 무더위와 장마 속에서도 그들은 쉬지 않고 거리로 나왔다. 생계 대책을 잃어버렸지만 후손들의 미래, 살만한 내일을 위해 그들은 자신의 현실을 뒤로 하고 나온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문제는 광주에서 출발했지만 이랜드 여성 노동자들의 처절한 시위는 또 어떠했는가. 대형 할인점에 근무하던 이들은 서울에서, 순천에서, 울산에서 각각 일하던직장으로부터 쫓겨났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된 몇 개의 보호법이 실행되기도 전에 법의 허술한 그물로부터 빠져나가는 기업들이 얄밉고, 그들의 횡포와도 같은 처사에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고 생계가 막막해진 근로자들의 하소연과 싸움은 눈물겹다.

여기에 더해 제주는 태풍 나리로 폐허가 됐다. 도로가 끊어지고 집이 허물어졌다. 사람이 10명 이상 숨졌다. 물에 잠긴 집은 완전히 씻어내기까지 얼마간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생계의 터전인 가게와 농지도 휩쓸려갔다. 고흥과 완도를 비롯한 남도의 바닷가 고을들도 마찬가지 피해를 당했다. 도로와 철도가 유실되고 집과 학교까지 물에 잠겨 공부도 못하고 잠자리도 불편하게 지내는 수재민이 수만명이다. 학력위조 스캔들과 이들 새터민?노동자들의 현실은 양극화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말뿐인 관심은 그만

시민의소리 기자들은 지난 한 주 동안 새터민을 비롯해 북쪽이 고향인 사람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족들, 노숙자 쉼터, 외국인 근로자 등 명절이 다가와도 고향에 갈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한가위의 넉넉한 인심을 이들과 나누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신문의 인터뷰에 응하기 싫다고 말했다. 더 이상 말 뿐인 관심은 그만해 달라는 의사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이 더 이상 방송과 신문에 등장하지 않는다 해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존재와 함께 지난 세월과 시대가 그들에게 남긴 깊은 상처와 슬픔 역시 사라질 수 없다.

올해 한가위는, 하지만 즐겁지만은 않게 됐다. 경제형편이 나빠서만은 아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던 옛말은 들녘의 수확이 풍성해진 인심을 일컫는다. 이날은 햇곡식과 과일을 나누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뒷동산에 올라 달맞이 하면서 소원을 빌고 민속놀이를 하면서 화합을 다진다. 물산도 인심도 넉넉한 시절이 매년 이맘때다. 기왕 나누고 베푸는 넉넉한 한가위를 맞이하였으니, 고향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그들, 타국까지 와서 우리를 위해 일하는 그들, 일자리에서 쫓겨난 그들, 집도 일터도 일은 그들을 생각하고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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