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일 있더라”
“처음에는 따가운 시선이 많았지요. 자기 부모도 못 모시는 사람들이 남한테 전시용으로 하는 것 아니냐. 얼마나 가겠느냐는 것이었죠. 그 말 들으면서도 3년여 묵묵히 해 오다 보니 지금은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어요.”
‘어른을 사모하는 모임’ 광주시 광산구 운남동 지부장 이영안(47)씨. 약칭 ‘어사모’라는 봉사단체가 만들어진 것은 2005년 6월경이다. 당시 구청장이었던 송병태 광산구청장의 제안이 한 계기였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동(洞) 주민자치위원회 등에 참여하고 있었던 이 지부장도 관내 어르신들을 챙기자는 취지에 흔쾌히 동의했다.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본인 스스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남 옥천이 고향인 이씨의 양 부모님은 사실 장애인이기도 하다. 두 분 모두 일찍이 농아인이었다. 4남매 중 장남인 이씨가 나름의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두고 늘 마음이 편안할 수는 없었다.
뜻밖의 제안에 덜컥 수락은 했지만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초창기인지라 회원도 마땅히 없었다. 주위 지인들을 찾아 동참을 권했지만 반응 역시 차가웠다.
“장사 속으로 하는 것 아니냐고고 하더군요. 해 봐야 얼마나 하겠느냐고, 가만히 있었으면 그런 얘기도 들을일 없었을텐데 괜히 했나 싶기도 하고. 그 분들 생각을 바꿀 수 있기 위해서라도 내가 꾸준히 하는 것 밖에 없겠더라구요.”
만나는 사람마다 취지를 설명했다. 차츰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관내 홀로 사시는 노인들을 찾아 집안 청소도 도와주고 한 달에 한 번씩 쌀이며 김치도 가져다 드렸다.
처음에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동사무소에 부탁해 막상 독거노인을 찾아보면 의외로 재산이 적지 않는 경우였다. 이것을 두고 회원들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사실 우리보다 더 부자인데도 사는 모습은 말 할 수 없이 비참한 거예요. 자식들에게 재산 나눠주면 그때부터 더는 찾아보지 않는 것이죠. 우리 부모세대들이 힘들게 고생만하고 결국 자식들한테도 대우 한번 못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세대들을 다시 한 번 더 이해하게 됐죠.”
간단한 점심식사에 불과하지만 어르신들을 한번 모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많은 어르신들을 한꺼번에 모실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 끝에 크게 아파트 단지를 네 곳으로 나눠 차례로 어른들을 모시기로 했다. 이번에는 1단지부터 3단지까지, 다음에는 4단지부터 6단지까지 어르신을 모시는 식이다. 첫 자리가 두 번째 자리가 되고, 이렇게 3달에 한번 자리를 마련하다 보니 1년이 갔다.
한번 식사대접을 하는데 만 100~150여만원이 들어갔다. 회원 34명이 월 2만원씩 회비를 내는 것으로는 감당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 당구장을 하시는 분, 씽크대 자영업을 하시는 분등 동네 뜻 있는 분들이 그 빈 곳을 채워주었다.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올해는 1년에 두 차례 동사무소 강당을 빌려 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지만 식사대접은 ‘어사모’의 가장 큰 행사의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중증 요양시설을 찾아 온 것도 2년여째다. 송정 서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성심원’에는 현재 남의 도움이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중증 노인 20여분이 생활하고 있는 곳. ‘어사모’ 운남지부 회원들은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이곳을 찾아 빨래봉사와 점심식사를 제공해 오고 있다.회원 대부분은 자녀들과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과 함께 좋은 경험을 같이 나누고 더 없는 교육의 장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올 초부터 성심원을 찾게 됐다는 노광숙(44.운남동)씨 역시 “빨래를 하면서 더 많은 것을 느꼈다”며 “어른들이 밥 한 끼에도 감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얻어 오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이 지부장은 “어른들을 뵙다보면 국가나 사회가 아직 노인세대들을 위해 다 챙기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보이더라”며 “어르신들을 찾아보면서부터는 자기 부모들에게 한번이라도 더 전화하게 되고, 더 살피게 된다”고 말했다.
“얼마 전 해남의 한 복지관에서 연락이 왔더군요. 복지관에서 부모님을 살피고 있었던가 봐요. 부모님도 못 모신다는 생각에 늘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내가 주위를 살피다보니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우리 부모님을 살피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은 함께 나누고 사는 가 봅니다.”
마흔 중반, 이 지부장이 느껴보는 삶의 또 다른 교훈이었다.
“봉사라니요. 우리가 더 배우고 옵니다” ■ 인터뷰 - 월곡동 어사모 박민영 회장 2005년 6월에 결성된 민간 봉사단체 ‘어사모’는 처음 광산구 19개 동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현재는 송정2동, 도산동, 우산동, 신층동, 신가동, 첨단동 등 12개 동 지부가 운영되고 있다. 현재 광산구 ‘어사모’ 회원은 230여명. 30~40대 젊은 층이 대부분이며, 직장인, 자영업자, 주부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