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세대들 더 이해하게 됐죠”
“부모세대들 더 이해하게 됐죠”
  • 이국언 기자
  • 승인 2007.09.18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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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희망이다] ‘어르신을 사모하는 모임’

‘어사모’, 3년째 동네어르신 식사 대접
“국가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일 있더라”

“처음에는 따가운 시선이 많았지요. 자기 부모도 못 모시는 사람들이 남한테 전시용으로 하는 것 아니냐. 얼마나 가겠느냐는 것이었죠. 그 말 들으면서도 3년여 묵묵히 해 오다 보니 지금은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어요.”

‘어른을 사모하는 모임’ 광주시 광산구 운남동 지부장 이영안(47)씨. 약칭 ‘어사모’라는 봉사단체가 만들어진 것은 2005년 6월경이다. 당시 구청장이었던 송병태 광산구청장의 제안이 한 계기였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동(洞) 주민자치위원회 등에 참여하고 있었던 이 지부장도 관내 어르신들을 챙기자는 취지에 흔쾌히 동의했다.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본인 스스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남 옥천이 고향인 이씨의 양 부모님은 사실 장애인이기도 하다. 두 분 모두 일찍이 농아인이었다. 4남매 중 장남인 이씨가 나름의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두고 늘 마음이 편안할 수는 없었다.

뜻밖의 제안에 덜컥 수락은 했지만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초창기인지라 회원도 마땅히 없었다. 주위 지인들을 찾아 동참을 권했지만 반응 역시 차가웠다.

“장사 속으로 하는 것 아니냐고고 하더군요. 해 봐야 얼마나 하겠느냐고, 가만히 있었으면 그런 얘기도 들을일 없었을텐데 괜히 했나 싶기도 하고. 그 분들 생각을 바꿀 수 있기 위해서라도 내가 꾸준히 하는 것 밖에 없겠더라구요.”

만나는 사람마다 취지를 설명했다. 차츰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관내 홀로 사시는 노인들을 찾아 집안 청소도 도와주고 한 달에 한 번씩 쌀이며 김치도 가져다 드렸다.

▲ 중증 요양시설인 ‘성심원’을 찾은 회원들이 한 가득 손수 빤 세탁물을 널고 있다.
90년대 중반 무렵,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형성된 운남동은 광주에서도 손꼽히는 아파트 밀집 지역이다. 주공아파트 1~8단지, 삼성, 남양아파트, 자연부락 등이다. 그만큼 노인 인구도 많았다.

처음에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동사무소에 부탁해 막상 독거노인을 찾아보면 의외로 재산이 적지 않는 경우였다. 이것을 두고 회원들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사실 우리보다 더 부자인데도 사는 모습은 말 할 수 없이 비참한 거예요. 자식들에게 재산 나눠주면 그때부터 더는 찾아보지 않는 것이죠. 우리 부모세대들이 힘들게 고생만하고 결국 자식들한테도 대우 한번 못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세대들을 다시 한 번 더 이해하게 됐죠.”

간단한 점심식사에 불과하지만 어르신들을 한번 모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많은 어르신들을 한꺼번에 모실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 끝에 크게 아파트 단지를 네 곳으로 나눠 차례로 어른들을 모시기로 했다. 이번에는 1단지부터 3단지까지, 다음에는 4단지부터 6단지까지 어르신을 모시는 식이다. 첫 자리가 두 번째 자리가 되고, 이렇게 3달에 한번 자리를 마련하다 보니 1년이 갔다.

한번 식사대접을 하는데 만 100~150여만원이 들어갔다. 회원 34명이 월 2만원씩 회비를 내는 것으로는 감당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 당구장을 하시는 분, 씽크대 자영업을 하시는 분등 동네 뜻 있는 분들이 그 빈 곳을 채워주었다.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올해는 1년에 두 차례 동사무소 강당을 빌려 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지만 식사대접은 ‘어사모’의 가장 큰 행사의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중증 요양시설을 찾아 온 것도 2년여째다. 송정 서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성심원’에는 현재 남의 도움이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중증 노인 20여분이 생활하고 있는 곳. ‘어사모’ 운남지부 회원들은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이곳을 찾아 빨래봉사와 점심식사를 제공해 오고 있다.회원 대부분은 자녀들과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과 함께 좋은 경험을 같이 나누고  더 없는 교육의 장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 운남동 ‘어사모’에서 관내 어르신들을 초대해 점심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회원 최옥련(운남동)씨는 지난해 초부터 ‘어사모’에 발을 디뎠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한때 남의 봉사 손길을 받았던 것이 한 계기였다. 중학생 딸과 함께 다녀오고 있는 최씨는 “성심원에 다녀오면 왠지 마음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최씨는 “누워서 식사도 못하시는 할머니들을 보면 나도 언젠가는 똑 같은 입장에 서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새로워지더라”고 말했다.

올 초부터 성심원을 찾게 됐다는 노광숙(44.운남동)씨 역시 “빨래를 하면서 더 많은 것을 느꼈다”며 “어른들이 밥 한 끼에도 감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얻어 오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이 지부장은 “어른들을 뵙다보면 국가나 사회가 아직 노인세대들을 위해 다 챙기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보이더라”며 “어르신들을 찾아보면서부터는 자기 부모들에게 한번이라도 더 전화하게 되고, 더 살피게 된다”고 말했다.

“얼마 전 해남의 한 복지관에서 연락이 왔더군요. 복지관에서 부모님을 살피고 있었던가 봐요. 부모님도 못 모신다는 생각에 늘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내가 주위를 살피다보니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우리 부모님을 살피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은 함께 나누고 사는 가 봅니다.”

마흔 중반, 이 지부장이 느껴보는 삶의 또 다른 교훈이었다.

“봉사라니요. 우리가 더 배우고 옵니다”
■ 인터뷰 - 월곡동 어사모 박민영 회장

2005년 6월에 결성된 민간 봉사단체 ‘어사모’는 처음 광산구 19개 동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현재는 송정2동, 도산동, 우산동, 신층동, 신가동, 첨단동 등 12개 동 지부가 운영되고 있다. 현재 광산구 ‘어사모’ 회원은 230여명. 30~40대 젊은 층이 대부분이며, 직장인, 자영업자, 주부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송병태 전 광산구청장이 현직에 있을 때는 제법 굴러갔는데, 그 뒤 사람을 보고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 둘 떨어지고 지금은 초심 그대로인 사람들만 남았다는 게 회원들의 얘기다. 오히려 이렇게 순수한 사람들만 남다보니 모임이 더 탄탄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 같다고.

박민영(46) 월곡2동 회장이 동네 소외계층을 살펴 온 것은 9년여 전이다. ‘어사모’가 결성되면서 같이 하게 됐지만 박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은 일찍부터 자원봉사단을 꾸려 주위를 살펴오던 터였다. 이들은 현재 매달 한 차례 관내 모자가정, 부자가정,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세대에 김치를 담아 직접 전해 오고 있다. 현재 월곡2동 어사모 회원들은 약 20여명. 

김치 보내기 행사 외에 이들이 특별히 하는 일은 동네에 있는 엠마우스 어린이집 아이들을 찾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라 머리손질을 위해 미용실 한번 들리기도 쉽지 않거든요. 다행히 회원 중에 미용하신분이 있었죠.”

회원들 스스로 좋아서 나선 일이지만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박 회장처럼 개인 일이 있는 경우, 자기 일에 앞서 주위를 살핀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는 일이다. 무엇보다 빠듯한 재정은 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이었다.

“회원들 만나면 차 한 잔이라도 해야 하다 보니 식사자리도 서로 피해서 만났죠. 종이컵에 음료수를 나눠 마실 정도로 모임 운영하는 일에는 돈 한 푼 쓰지 않았죠” 이들의 정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동네 많은 후원회원들이 이들의 많은 짐을 덜어주고 있지만 여전히 힘에 겨운 것은 사실이다.

박 회장은 엠마우스 어린이들을 만나는 것에 대해 “오히려 마음 수양하러 간다”고 했다.

“아이들 엄마의 얼굴을 보면 생각 외로 편하고 밝아 보이던데 과연 내가 그 입장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 몇 번을 생각하게 됐죠. 집에 돌아와 우리 아이들을 보면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으로도 새삼 감사하게 느끼게 됩니다. 아이들 공부 안한다고 뭐라고 하다가도, 그 까짓 공부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죠. 그 마음이 오래가지 않아서 탈이지만. 봉사하러 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더 많이 배워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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