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여신에게
정의의 여신에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9.1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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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 눈]곽규호 편집장

유스티치아 님께.

지루한 늦장마도 어느덧 가고 천고마비, 등화가친의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만 우리 겨레 사람들의 속이 편치 않아 편지 띄웁니다.

요즘(굳이 요즘의 일만은 아닌 것이 확실하지만) 당신의 후배들에게 좀 문제 있지 않나, 우리 서민들 불만이 높아가고 있어요.

왜냐고요?

아, 보셨잖습니까. 지난 번 모 재벌 두 사람이 집행유예 선고받은 판결 말입니다.

한 사람은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지요.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1조원에 이르는 거액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었지요.

다른 한 사람도 성격은 다르지만 죄질은 좋지 않습니다. 룸살롱인가 단란주점인가에서 아들이 매를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어깨들을 데리고 쫓아가 뒷산으로 끌고 올라가 뺨도 때리고, 그 어깨들이 뒤처리하고, 뭐 그런 형태의 폭력범이었는데요.

유스티치아 님.


범죄기업인에 사회봉사명령

어떤 기업인은 모 시장에게 보따리에 2억원인가 줬다고 1년 살고 나왔답디다. 그것만 해도 가벼운 처벌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디다만, 수백억원 횡령한 사람에게 사회봉사조건부 집행유예판결을 국민이 이해할까요? 강연회나 언론 기고 등 형식도 사회봉사로 인정한다는데서는 법원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군요. 게다가 자기 재산 출연 액수도 나중에는 줄였다는데, 이런 사람에게 법원이 말하는 '개전의 정'이 있다고 보았다는 건지, 답답하군요.

눈 가린 정의의 속뜻은?

법원은 자식보복에 나섰던 그 어떤 그룹 총수에게 "'부정(父情)에 따른 범행이고 우발적이며, 직접 폭행하지 않았다는 것, 피해자들과 합의에 이른 점 등을 고려"하여 집유와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이야 얼마나 분통이 터지겠습니까만 다 그렇게 직접 보복에 나선다면 우리 사회에 법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요.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하여 일반인이라면 보복폭행의 경우 징역 5년 이상은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적용을 받아서 형사처벌을 받는 사람들이 30만 명쯤 되는데, 김 회장과 같은 일을 하고 2심에서 집행유예로 나오는 경우는 아무리 변호사 선임료를 많이 주더라도 불가능하다. 이번 판결은 재벌회장이 아닌 다음에는 불가능한 판결이다"라고 했답니다. 그는 판사도 아니고 법관도 아니지만 판례를 들고 지적을 하는 말이니 무시할 수 없을 것 같군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매월 발표하는 양심수 자료가 있습니다. 7월 10일 현재 73명.  이들 가운데 학생은 9명, 노동자가 35명으로 가장 많군요. 농민 2, 철거민 5, 기타 22명입니다. 판결 이전 구속상태인 노동자 수는 7월말 현재 983명이랍니다. 김영삼 정부(632명)나 김대중 정부(892명) 때보다 훨씬 많을 뿐 아니라 체포영장이 발부된 노동자가 40여명에 육박하고 있어 이미 1천명을 돌파한 것과 다름없다는 보도입니다.

양심수?구속노동자와 재벌의 차이는?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쩐’이겠네요. 죄를 지었어도 사회에 큰 돈을 기부하면 강제로 강연회나 하고 돌아다니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겠지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정의는 법을 살 수 있는 돈에 좌우되는 건가요?

유스티티아님의 칼과 저울은 어디다 쓸 데가 있겠습니까. 만든 지 2000년이 넘는 고장 난 저울과 녹슨 칼을 들고 있어서인가요?혹시 얼마 전부터 눈을 감고 서 계신다던데, 아예 "눈 딱 감고" 판결하겠단 의지의 발현이었던가요? 말씀 한 번 해 주세요.

<유스티치아(Justitia) : 로마신화의 정의의 여신. 전통적으로 안대를 하고 있으며 오른 손에 양날의 칼을, 왼손에는 천칭(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여기에서 정의(Justice)라는 말이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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