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권력지상주의의 희극
신정아-권력지상주의의 희극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9.1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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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등등]김원중(자유기고가)

 ‘요즘 깜도 안 된다’던 한 여교수의 날개짓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아주 작은 초기의 사건이 나중에 엄청난 혼동을 가져 올 수 있다는 카오스이론으로 발전한 ‘나비효과’를 여기다 붙여도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권력에 너무 가까이 가서 타들어가던 불나비가 핵심권력의 치부를 드러내게 함으로써 온 나라를 뒤흔든 것을 보니 한국판 ‘불나비효과’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한 대학의 교수 임용과정에서 불거진 학위 위조와 둿거래가 광주비엔날레를 거쳐 지식인 사회와 연예계까지 덮치고 마지막 종착역인 권력의 심장부까지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사실 예전엔 우리사회의 치부가 드러나면 ‘구더기가 너무 많아 벌려서 좋을 게 없다’는 논리로 대충 가마니를 덮는 게 관례였다. 그리곤 가벼운 스캔들로 축소하기 일쑤였다. 이번에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소설’의 ‘깜’도 안 된다고 기자들을 만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공표했다. 대충 덮자는 것으로 읽혀졌다.

실패한 개혁세력의 부패

하지만 지금 때가 어느 때인가. 권력 말기에 대선을 3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 아니던가. 결국 며칠만에 국민에게 사과함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체 하는 바보’라는 비아냥을 넘어 현 정권의 도덕성에 심대한 타격을 자초하고 말았다. 이미 선은 넘었다. 이제 더 이상 ‘소설’ 같지도 않고 ‘실화’로써 서서히 권력형 게이트로 모양새가 갖춰지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도 이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신정아씨가 공공연히 “변양균 실장 정도가 배후면 수없이 많아”라고 떠들고 있으니 언론에서 ‘신정아 쓰나미’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게 느껴진다.

정치권력의 3가지 병이 있다고 한다. 독재하기 쉽고, 부패하기 쉽고, 오만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한 세기 전에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악턴은 ‘자유의 역사’라는 책에서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참으로 골고루다. 민주적인 절차와 판단이 아니라 통치권자의 판단이 우선했고, 권력 주위의 부패와 오만이 화를 불렀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역사적 선택의 결과로 탄생한 정권은 적어도 ‘부패한 비도덕적인 정권’이라는 말 보다는 차라리 ‘개혁에 실패한 정권’이라는 오명을 받는 게 낫다. 권력 10년 만에 30년 치의 기름기가 덕지덕지 끼어있다는 비판의 화살을 과연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까.

카뮈는 “부조리란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며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인간의 의지를 좌절시키는 비합리성의 세계”라고 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부조리하다. 정당한 절차와 상식으로 사회가 운영되지 않고 힘 있는 자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마비된 문제의식이 ‘문제’

현 정권이 겪고 있는 도덕성의 위기는 권력을 사적 이익 극대화에 이용하고, 그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데 있다. 응당 권력의 프리미엄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이권 개입’, ‘청탁’, ‘인사’ 등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는 게 윗선으로 이야기되는 권력이다. 하기야 우리 주위에서도 이런 면면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많은 다리품과 논리적인 해결, 실력보다도 ‘전화 한 통’의 위력을 실감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권력의 개입이 가능하도록 짜여진 우리의 현실 사회 구조가 문제를 파생시킨 근본적인 배경일 것이다. 웬만한 기관이나 단체 특히 정부나 지방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단체는 당연직의 과도한 배정과 자기 사람 심기가 구조적으로 가능하도록 조직의 헌법인 정관에 명시되어 있다.

신씨의 허위학력위조만 아니었다면 수면 아래 조용히 있었을 이야기들이다. 동국대 전 총장은 좋은 사람을 추천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했다지 않은가. 광주비엔날레도 2시간 동안 프리젠테이션 받고,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오케이하지 않았나. 최고 권력층과 동국대, 광주비엔날레 이사진 등이 권력의 역학관계를 파악하고 활용하는 감각은 익혔어도, 사람을 검증하는 시스템과 가짜를 알아보는 안목까진 갖추지 못한 것 같다.

이번 사건은 학위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허영심이 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권력지상주의가 빚은 희극이자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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