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핸드폰이 없는 이유
내가 핸드폰이 없는 이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7.0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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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 밝아오니]김승환(충북민교협회장)

회의 도중에 전화가 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식사 도중에 전화가 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 역시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화 도중에 전화가 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 역시 전화를 받지 않는다. 더 좋은 답은 <회의, 식사, 대화 등 어떤 일이 진행될 때에는 전화를 꺼놓는다>이다. 이 정답은 너무나 쉬워서 누구나 아는 기본예절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장소와 시간을 상관치 않고 핸드폰을 받고 또 침을 뱉는데, 많은 한국인들은 자신의 무의식적인 그 행위가 관광거리라는 것조차 모른다. 

특히 회의 도중 전화를 받는 것은 무례함의 극치다. 그것은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회의 구성원들을 무시하는 태도다. 식사는 조금 예외가 있겠지만 식사 도중 핸드폰을 받는 것 역시 무례한 행동이고 또 무식한 행동이다. 대화 중에 받는 전화는 더욱 그렇다. 상대방을 안하무인으로 대한다는 강력한 발화(發話)가 바로 면전에서 전화를 받는 행위다. 그런데도 한국인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은 회의 때나 식사 도중 그리고 대화 중간에 전화가 오면 서슴없이 받는다. 조금 예의를 갖추는 사람은, 고개를 숙이거나 황급히 바깥으로 나간다.

자, 오늘부터 전화벨이 울리고 황급히 바깥으로 나가는 뒷모습을 보시기 바란다. 그 얼마나 추한가? 고개를 숙이고 전화를 받는 것 역시 참으로 보기 싫다. 그런 사람은 신뢰를 할 수 없다. 대화나 회의 도중, 다른 전화를 받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신중하지 못한 사람이고 또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 뿐인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받는 사람은 분주해 보이고 의식은 산만해 보인다. 안정감도 없고 진지함도 없다. 그런 사람은 경계를 해야 한다. 주위가 산만하고 또 진지하지 못함으로 낭패(狼狽)를 하기 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급하거나 예외적인 경우가 있으므로 일률적으로 재단할 것은 아니다. 또 버스나 지하철이라면 아주 조용히 간단하게 통화하는 것은 무방하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일이 진행될 때는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전화를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문자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으므로 즉시통화가 아니라도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핸드폰이 없다. 그래서 ‘핸드폰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창경원 시절의 동물원에 가야 할 기념물로 보는 눈빛이 묘하다. 대개는, 바쁘실 텐데 어떻게 견디시느냐 또는 불편해서 어찌 사느냐라는 위로가 뒤따른다. 조금 배려심이 있는 사람은 핸드폰이 없는 것이 좋다는 동의와 동정을 섞어서 말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하나 사 줄 테니 가지고 다니겠느냐는 고마운 제의도 없지 않았다. 좀더 솔직한 사람들은 김가 당신은 핸드폰이 없어서 편하겠지만 우리가 불편하므로 곡직불문(曲直不問)하고 핸드폰을 마련해라라는 명령서를 낭독한다.

핸드폰이 없으면 불편한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여름의 한증막 같은 공중전화박스나 겨울의 시린 손은 그렇다 치고, 동전이나 전화카드를 소지하고 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 그 뿐인가. 행여 약속 시간에 늦어 공중전화를 찾아보면 찾기도 쉽지 않으려니와 설령 찾더라도 거미줄이 성성한 경우도 있고, 고장난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 공중전화는 외국인이나 사용하는 인종차별적 공공기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그리고 각종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나는 핸드폰을 가질 생각이 없다. 이 광기(狂氣) 서린 세상에서 핸드폰 감옥에까지 갇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미셀 푸꼬(Micheal Foucault)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규율을 강조했다. 전후를 생략하거니와 그 내용은 감옥에서 간수가 있건 없건 죄수들은 관리감시 체제를 내면화하여 자기를 감시하고 자기를 처벌한다는 뜻이다. 핸드폰은 근대 기술권력이 자본권력과 연대하여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는 고도의 통치술인 것이다.

핸드폰을 가진 호모핸드포니아(Homohandponia)는 근대의 기술감옥에 유폐되어서 철저하게 관리당하는 노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편리라는 이기심에 눈이 멀어서 스스로를 감옥의 죄수(罪囚)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을 가지지 않음으로써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근대 자본과 과학기술의 폭력에 저항하는 것이다. 티나[there is no alternative]의 엄혹한 이 세상에서 핸드폰 하나 가지지 않는 것은 무척이나 치열한 전쟁이다. 그러나 그 전쟁은 수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고귀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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