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죽교에서 친구를 얻은 기쁨
선죽교에서 친구를 얻은 기쁨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6.2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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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대한민국]이 신 (통일사회연구회 회장)

5월 말에 평양을 다녀온 뒤 지난 7일 개성을 방문하였다. 새벽밥을 먹고 광주를 출발하여 개성 자남산 여관에서 점심을 먹고 밤 10시에 집에 돌아온 바쁜 일정이었지만 남과 북이 1일 생활권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남측 비무장지대에서 북측까지 가는 시간이 1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렇게 가까이 있는 곳을 60년 넘게 오도 가도 못하고 천리길처럼 느끼고 살아야 했던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과 허탈함이 낯선 땅을 밟는다는 설레임과 함께 밀려왔다.

개성공업지구에 도착한 우리는 남북이 하나 되어 민둥산에 배나무를 심었다.

"나는 1967년 동갑내기며 성도 같고 나처럼 두 딸을 가진 아빠인 이명익 안내원과 땀을 흘리며 통일나무를 심었다. 그는 농부처럼 소박한 얼굴과 따뜻한 웃음을 가진,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엘리트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선죽교에서 다시 만나 사진을 찍고 잠시 거리를 걸으면서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선죽교에 서서 600년 전 동갑내기로 태어나 한 스승 밑에서 수제자로 동문수학하며  서로 아끼고 절친했으며 성도 같았던 정몽주와 정도전이 생각났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지혜를 모으고 목숨을 맡길 정도로 가까웠던 두 사람은 고려 말 국가의 진로를 놓고 정치적 노선이 갈라지면서 서로 정적이 되고 말았다.정몽주는 고려라는 국가 틀을 유지한 채 내부의 개혁을 통해 새로운 시대발전을 원했고 정도전은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변혁을 원했다. 두 사람은 격동기에 시대를 보는 관점과 방식이 달랐고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되었으며 정몽주는 고려왕조를 지키려다 선죽교에서 생을 마감했고, 정도전은 조선을 건국한 1등 공신이 되었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두 사람은 태종이 된 이방원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두 영웅의 자취가 남겨진 선죽교에서 나는 새로운 친구와 앞날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태어난 곳과 자라온 환경은 다르지만 통일이라는 우리 민족 공통의 소망을 실현하는 길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둘의 마음이 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두 손을 꼭 잡고 힘과 지혜를 모아 예쁜 딸들에게 아름답고 부강한 통일 세상을 만들어 주자고 無言의 약속을 하였다.

개성에 사는 금주와 광주에 사는 인화가 선죽교에서 만나 우리처럼 친구가 되어 이메일도 주고받고 경의선을 타고 광주역에 도착하여 무등산에 손잡고 오르는 그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해 대선에서 분단의 고통을 자신들의 기쁨으로 여기며 기득권을 누렸던 친미냉전세력이 아닌 민주적이고 통일지향적인 정부가 들어서서 경의선 통일열차가 휴전선을 자유롭게 오고가며 2010년 낮은 단계 통일로 달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07년 아버지로서 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12월 19일 역사발전에 걸맞는  정권의 선택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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