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시민과 보통시민
특별시민과 보통시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6.2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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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 밝아오니]정지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병역특례제도를 이용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비롯한 특권층 자제들이 사실상 군대생활을 하지 않고 전국 순회공연이나 해외공연, 영어공부, 사법시험 준비를 하며 즐거운 여가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의 전면 수사에 따라 비리의 전모가 점점 드러나고 있으나 이참에 병역비리가 완전히 뿌리 뽑히거나 병역특례 자체가 없어지리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병역을 국민 모두의 의무로 정해놓고도 특별한 경우에 이를 면제받을 수 있는 예외, 즉 특례를 너무 많이 만들어 놓았다는 데 있다. 특례에는 물론 일정한 조건과 명분이 있다. 그러나 돈과 권력, 정보가 있는 특권층은 규정과 조건의 빈틈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특별 대우를 받는 ‘합법적인 병역 기피’를 자행하는 것이다.

병역특례제도는 일반법인 병역법의 규정에 따른 것이지만 대부분의 특례제도는 특별법을 근거로 한다. 이를테면 ‘태권도공원 조성을 위한 특별법’ ‘성매매 특별법’ ‘신행정도시특별법’ ‘서남권투자촉진특별법’ 'F1특별법’ ‘연안권발전특별법’ 등에 따라 일반법에 우선하여 특별한 대우나 지원, 처벌을 가능하도록 하는 예외적인 특례가 정당화된다.

그런데 이런 특례가 본래의 취지와는 다른 목적으로 너무 자주, 많이 허용되면, 일반법은 무력화되고 특례가 오히려 관행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특목고의 일탈이다. 원래는 공업, 농업, 수산, 해양, 과학, 외국어, 예술, 체육, 국제 등 9개 분야의 특별학교를 육성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지금은 명문대 진학을 위해 외국어고, 과학고, 국제고, 예술고만이 번창하고 나머지 농, 공, 수산, 해양, 체육고는 명맥을 유지하기도 힘든 지경이 되어버렸다. 

행정단위도 그냥 ‘시’로는 성이 차지 않아 특별시, 광역시, 직할시가 생기면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마을과 읍, 면, 군 같은 풀뿌리 행정단위들은 점점 가난하고 텅 비게 되어 멀지 않아 구조조정에 의한 통폐합이 불가피한 형편이다. 반면 서울특별시와 광역시, 직할시들은 비만증에 걸려 전인구의 대부분이 수도권과 대도시에 몰려 복작대고 있다.

특별시와 광역시, 직할시에 사는 ‘특별한’ 시민들이  나머지 지역에 사는 보통시민들보다 훨씬 많아지면서 국가의 정책도 특별시민들을 위한 정책으로 기울고 특별 대우를 받기 위한 특별법은 더욱 많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예외가 규칙이 되고 특례가 관행이 되면서 꼬리가 개를 흔드는 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요즘 보통시민들의 법감정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낙후지역 개발과 내 고장의 발전을 명분으로 내걸고 국제적인 행사나 스포츠 시설 유치를 위해 여론몰이를 하면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중앙정부로부터 막대한 재정지원을 얻어내려고  뛰는 것은 이제 대한민국 지방정치의 낯익은 풍경이 되어버렸다. 특별법을 통해 특혜를 얻어내려는 보통시민들의 이같은 안간힘은 한편으로 애처롭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망하기도 하다.

너도나도 특별법을 만들어 특별대우를 받는 특별시민이 되려고만 한다면, 일반시민, 보통시민의 설자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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