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망치는 에벌린 패러독스
문화도시 망치는 에벌린 패러독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6.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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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등등]김원중 지역문화교류 호남재단 사무국

충장로가 변하고 있다. 충장로 특화의 거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바닥 포장이 아스콘에서 화강석으로 교체되고, 황동주물동판과 LED 바닥조명과 벤치 등이 설치되고 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진행 상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이 국립 아시아문화의전당을 짓기 위한 터 닦기 공사라면,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충장로 특화의 거리다.

5월 초 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과 관련한 토론회 자리에서 “충장로 특화의 거리 조성사업 보도 포장공사는 디자인과 개성이 부족해 특색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광주시는 이에 대해 “충장로 상가 번영회와 동구청 등과 충분한 협의와 관계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시공”되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정한 합의 즉 집단적 동조가 이루어졌다는 의미였다. 

왜 그때 ‘NO’라고 못했을까

경영학 용어 중에 ‘에벌린 패러독스’라는 게 있다. 어느 날 처가에 가게 된 제리 B 하비 박사는 집에서 편히 쉬고 싶었다. 그러나 장인이 "에벌린에 가서 밥이나 먹지"라고 했다. 그의 아내가 맞장구치자 장모는 기다렸다는 듯 좋아했고 그도 마지못해 동의했다. 찾아간 식당은 엉망이었고, 집에 돌아온 뒤 분위기가 썰렁해 그는 "그런 대로 맛은 좋았죠"라고 떠봤다. 그러자 세 사람은 일제히 "나는 처음부터 가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의견을 낸 장인조차도 단지 사위와 말을 걸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분별력 있는 성인 네 사람은 아무도 가고 싶지 않았던 먼 길을 갔다 온 셈이다. 그는 이 경험에서 "그때 왜 아무도 NO라고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이 사례를 ‘에벌린 패러독스’라고 이름 지었다.

 ‘에벌린 패러독스’는 권위적이고 권력의 눈치 보기에 젖어있는 한국의 조직문화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난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조직이 어떤 제안이나 결정을 내렸을 때, 아무도 ‘NO’라고 말하지 못한다. 겉보기에는 의견을 듣고, 협의를 하고, 자문을 구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조직의 힘과 압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에 의해 집단적 동조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들은 강박관념처럼 무언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청이 이전하고 도심이 공동화되니까 금남로, 충장로, 예술의 거리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항상 출발한다. 동구 예술의 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루미나리에도 도심 활성화와 특색있는 거리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했겠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최근 충장로 특화의 거리공사도 같은 길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문화마인드의 부재’로만 치부해서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조직 시스템의 문제로 봐야 하지 않을까?

공직사회 조직문화 바뀌어야

박광태 광주시장도 “문제가 있는 만큼 공사를 곧바로 중단하고 전체적인 점검을 통해 대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특화의 거리 조성 사업에 대한 지역 상인과 시의원, 문화전문가들의 비판을 의식한 듯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사업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로 읽힌다. 시민들과 가장 친밀하게 스킨십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 충장로가 문화도시 광주로 변모하고 있음을 증거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장로를 ‘특색있고 운치있는 아름다운 거리’, ‘걷고 싶고 찾고 싶은 광주의 랜드마크’로 꾸민다는 계획 아래 2004년부터 준비해 온 것에 비하면 초라하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게 되는 결과가 아니기를 바란다.

시 관계자는 “화강석은 재질의 특성에서 주는 회색빛 느낌은 오히려 도로를 중후하고, 단순 안정감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면서 애초 계획대로 갈 태세다. ‘공무원 건축 양식’으로 불리는 관공서 건물들이 천편일률적으로 회색빛 화강석과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유를 알 것 같다. ‘중후함’과 ‘안정감’은 공권력의 위압적 모습을 나타내는 말에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회색빛 말고 빛고을에 걸맞는 역동성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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