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주 언론화살에 흩어진 정당
반민주 언론화살에 흩어진 정당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6.18 1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가밝아오니]박지동 전 광주대 교수
유럽에서 대량정보 수단인 신문이 등장한 것은 절대군주의 특혜성 허가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당시의 언론사업자들은 강력한 자산계층으로서의 특권을 누리면서 왕과 귀족과 승려들과의 친밀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다수의 근로대중을 통제·유도하고 소수독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정도의 수준에서  '보도의 진실·공정성'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일반 서민대중의 민주의식이 고양되면서 “실질적으로 民意를 보장해줄 수 있는 언론 민주화”의 요구가 거세어졌고 자산계층 언론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보도의 진실·공정성은 모든 매체의 생명”이라는 구호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보도의 진실·공정은 '부당한 권력으로부터의 규제'와 '자산계층 대변자로서의 사리사욕'으로부터 정직·성실하게 근로하는 서민대중 수용자들의 권익을 제대로 보장해줌으로써 약육강식의 정글사회를 막자”는데 언론의 사명이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언론 민주화 투쟁'은 바로 이같은 '언론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모든 언론인과 언론사들의 진실·공정·정의·평등·협력지향의 부단한 노력을 의미하게 되었다.

서양 언론이 이처럼 진실·공정성 발양으로 민주 복지사회를 발전시켜온데 반하여 한국의 언론은 조선·동아 등의 친일파 언론사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생겨난지 87년 동안 시종일관 침략외세와 친외세 독재자권력을 지지·찬양·충성하면서 이에 저항하는 근로민중과 청년학생들의 진실·공정·평등사회 건설의 부르짖음을 억압·박살내는 쪽으로만 힘써왔다. 4·3과 5·18에서 정체를 드러냈듯이 비방의 창끝은 언제나 애써 일하는 근로민중과 청년학생에게로 향했다.

제주 4·3  봉기의 경우 일반민중은 해방된 조국에서 동등한 인격체로서 민주 독립 정부수립에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있었으나 미 점령군의 지시를 받는 일제 식민경찰들이 빨갱이 운운하며 설쳐대었으니 국민의 분노 폭발은 당연한 것이었다. 게다가 친일언론 조선·동아도 분단된 단독정부수립 보다는 통일정부를 원하는 국민의 뜻을 용공범죄로 몰아쳤으니 제주도민은 물론 전국민을 반공의 공포로 떨게 만들었다. 광주 5·18민중항쟁 역시 군사독재에 대한 시민들의 정의의 저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 외세 언론들은 이때도 좌익 운운하며 학생과 광주시민들을 죄인으로 몰아붙였다.

이제 어려운 민주화 투쟁으로 군사독재의 억압을 벗어나 민주선거로 집권한 열린우리당의 멸망도 머리와 손발을 마비시키는 독화살의 장기간의 집중사격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고 민주정당의 우유부단과 독화살을 함께 협력하여 막아내지 못한 自黨 내부의 의리없는 비겁성도 자살을 재촉하였다고 하겠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