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정부는 대답하라.
이제 한국정부는 대답하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6.1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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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최봉태 변호사 (전 국무총리 산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지난 5월 31일 일본 나고야 고등재판소에서 근로정신대 소송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여자 근로정신대로서 미쓰비시중공업의 군수공장에 동원된 한국인 여성 및 유족 등 7명이 일본국 및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약 2억 4천만엔의 손해배상 등을 구하는 항소심 판결이었다.

아오야마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원고들이 청구권과 관련한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는 이상 재판부는 그 이행을 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항소를 기각하고 말았다. 다만 이번 재판부는 1심에서 사실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던 강제연행과 강제노동에 대해 처음으로 불법행위였음을 인정했다.

보통민사 재판에서는 재판상 결론에 해당하는 주문을 먼저 낭독하고 이유는 나중에 설시하는데 이번 재판에서 재판장은 이례적으로 이유부터 설명하고 주문은 뒤로하는 형식으로 선고했던 것은 특이할 만한 일이다.

기각 판결이 믿기지 않은 듯 법정 안은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재판정에서 쓰러져 돌아가신 아버지?어머니를 외치며 “이 한을 풀지 못하고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며 통곡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한일 청구권협정을 이유로 한 일본 사법부의 판결은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이 체결된 지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그 문서를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다. 과연 재판부가 그 협정의 문서조차 보지 않고 기각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한일청구권 협정을 두고서도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의 해석이 다르다는 데 있다. 한국정부는 지난 2005년 한일청구권 협정 문서를 전면 공개한 바 있다. 당시 한국정부는 통상의 거래에서 생긴 청구권은 어찌 되었던 별도로 하더라도 비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불법행위에 기한 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고 밝힌바 있다.

이번 소송 건은 어린 여학생들에게 일본에게 가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고 속여 군수공장으로 데려간, 강제연행과 강제노동의 상징적 사건으로 한국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한일청구권 협정의 명백한 적용 제외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장은 한일청구권협정을 이유로 피고 측(일본정부와 미쓰비시)에 이행을 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 협정 문서를 두고 한국과 일본의 해석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정부가 당당히 밝혀야 한다.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에 관해 한국정부의 주장이 사실인지 일본정부의 주장이 사실인지 신속히 판단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위 절차를 밟지 않는다면 결국 2005년 한국정부의 발표가 허위였음을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지금이라도 적절한 보상조치를 취해야 한다.

피해자들은 현재 피해자에게 한 없이 고통만을 주고 있는 한일청구권협정의 즉각 파기를 요구하고 있다. 가해자인 일본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사죄와 정당한 보상을 받아 인간으로서 존엄을 회복하려 했지만 번번이 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막히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정부의 논리가 한일협정을 이유로 든 만큼, 한일협정을 파기하는 순간 일본 사법부로서는 청구권을 제한 할 법적 명분이 없어진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 협정에서는 원폭 피해자, 사할린 강제 이주민, 한센병, 우키시마 마루 피해자, 군 위안부 등은 아예 협상의 대상에서도 배제돼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더 이상 한일청구권협정을 유지할 존재가치도 없어졌다.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일협정으로 청구권 문제가 모두 끝났다고 하면서도 한센병 피해자와 원폭피해자에 대해 일부 보상금을 지원하는 등 앞뒤가 전혀 안 맞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한일청구권협정은 이미 1998년 독도 인근 해역의 조업권을 이유로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먼저 파기한 사례가 있다. 문제는 우리정부의 어정쩡한 태도다. 우리 정부도 피해자들에게 한과 고통을 주고 있는 한일청구권협정을 신속히 파기해, 피해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정당한 보상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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