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 이국언 기자
  • 승인 2007.03.22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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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는 희망이다]⑨그늘진 곳에 따뜻한 손 건네는 '광주청년나눔센터'

하루 100원씩 모아 매월 ‘따뜻한 밥상’ ‥ 나눔을 통한 공동체 정신 회복 한뜻

"재작년 처음 '몰래 산타' 학교를 열 때였는데, 몇 십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로 교통일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누가 이 눈 속에 올까 걱정했는데, 저의 기우였죠. 함박눈을 뒤집어쓰고 80~90%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몰래 산타'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05년 12월. 소외된 이웃을 위해 조그마한 손이라도 보태자는 취지로 결성된 '광주 청년나눔센터'[대표 김태진]가 시작한 첫 사업이었다.

▲ '광주청년나눔센터'가 진행한 지난해 '몰래산타'의 모습들.
'광주 청년나눔센터'는 IMF 이후 가속화 된 사회적 양극화의 현상에 주목하면서 만들어 진 청년 봉사단체다. 빈곤이나 장기실업으로 어려운 가정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안정망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 장애인 시설이나, 영아시설 등 사회복지 시설에 대한 손길이 부족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김태진 '광주 청년나눔센터' 대표는 "우리 주위의 이웃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부터 차별해소에 조그마한 보탬이 돼 보자는 취지였다"고 말한다. 초기에는 광주지역에서 청년운동을 전개해온 '겨레사랑청년회', '광주 늘푸른 청년회' 회원 등이 먼저 무릎을 맞댔다.

나눔을 통한 공동체 의식 회복에 관심을 갖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이들 청년단체들의 내부 사정과도 무관치 않다. 갈수록 정체상태를 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회적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한창이던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스스로 이들 단체의 문을 두드리는 청년들이 많았지만, 최는 2~3년 사이에는 아예 발길이 뚝 끊기다 시피 한 상태였다.

"미군 궤도차에 희생된 여중생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 젊은이들이 자발적인 촛불시위로 일어섰습니다. 젊은이들의 깨어있는 의식, 역량을 어떻게 묶어세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방법은 청년들의 특성을 살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요."

싸이월드에 클럽을 개설하자, 기대 밖의 화답이 있었다. 2005년 12월에만 이렇게 200여명이 뜻에 동참해 왔다. 젊은이들의 양심과 정의가 식은 것이 아니라, 이들의 열정을 담을 그릇이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싸이월드 클럽은 20~30대 사이버 세대, 온라인의 특성을 잘 포착한 시도였다. 

'몰래 산타' 대작전은 성탄절을 앞둔 12월 24일 밤, 저소득 가정과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 등의 아이들을 직접 방문해 몰래 산타가 돼 주는 것이다. 대상자는 주로 미 취학 아동과 초등 1~2년 학생들로, 학교 선생님이나 동네 공부방, 학교 사회복지사 등의 추천을 받는다.

참가자 모집은 1달 전부터 시작돼, 보통 1주일여 교육시간을 갖는다. 조를 나눠 아이들한테 보여 줄 깜짝 이벤트도 준비하고, 직접 건네 줄 선물을 고르는 시간이다. 아울러 가정을 사전에 방문해 미리 부모의 바람을 듣기도 한다.

'몰래 산타' 대작전은 24일 밤 6시, 산타 복장을 한 한 무더기의 발길들이 골목길로 흩어지면서부터 시작된다. 캐럴 송과 함께 케잌 등 작은 선물을 건네고, 미리 준비한 편지를 읽어주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성대한 잔치가 벌어지는 것이다.

"어떤 집에 가면 책 속에만 있는 산타가 정말 우리 아이들한테 왔다며 기뻐하는가 하면, 어떤 곳은 고맙다고 손을 잡고 그저 눈시울만 붉히기도 하지요."

005년 100여곳 가정의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해 준 이 '몰래산타' 작전은, 각계의 관심과 후원이 곁들여져 지난해 200여곳으로 늘었다. 광주를 비롯 광양, 순천, 여수, 해남, 화순 등 6개 지역으로까지 확대 됐다. 지난해에는 광주 500여명 등, 광주전남에서 모두 1천여명이 자발적 참여자로 나섰다.

'몰래 산타' 참여자들의 대부분은 20~30대 젊은이들이었다. 중학교 2학년, 40대 직장인이 있었는가 하면,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연인들, 수능 시험을 막 끝낸 고3 학생들도 많았다. 가족단위 참가자도 10여 가족이나 됐다. 지역사회에도 큰 사회적 반향을 몰고 왔다.

"처음에는 참가자들에게 선물비용을 얼마씩 지급해야 되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보람을 느낄 수 없다며 거부하더군요. 5천원이든 1만원이든 스스로 내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돈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김 대표의 말이다.

▲ 회원들은 매월 한차례씩 성빈여사와 영아일시 보호소를 찾아, 직접 요리한 음식들로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고 있다.
'광주 청년나눔센터'가 시작한 또 다른 봉사활동은 '따뜻한 밥상 나누기'. 어려운 가정 아이들과 소외 시설 어르신들을 위해, 한달에 한번 사랑과 영양이 듬뿍 담긴 한 끼의 식사를 만들어주는 봉사활동이다.

지난해부터 매달 한 차례 담쟁이교실, 큰솔학교, 성빈여사, 광주영아일시보호소 등을 찾은 데 이어, 올해 1월부터는 서구의 우성아동센터 한 곳을 추가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어울려 놀아주기도 하고, 외로운 어르신들에게는 말벗이 돼 주는 것이다. 지난 1월부터는 이들 공부방 3곳에 간식비 명목으로 매달 10만~20만원씩 후원해 오고 있는 터다.

이렇게 일상적인 나눔 운동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동참한 회원들의 몫이 크다. 300여명의 회원들이 매달 3천원씩 CMS 계좌를 통해 이 뜻에 동참하고 있는가 하면, 시설 봉사에도 매달 5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하루 100원씩, 한 달 3,000원이란 뜻이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마음이 더 소중한 것이다.

'몰래 산타'나 나눔 활동이 계기가 돼, 개인에게는 커다란 삶의 변화를 가져 온 경우도 적지 않다. 사회에 대한 인식의 확대 돼, 아예 청년단체의 회원이 된 경우도 적지 않다. 겨레사랑청년회 나눔마당 '깎지' 대표를 맡고 있는 김말숙(32)씨가 대표적이다.

직장 동료의 소개로 2005년 '몰래 산타'에 참여하게 된 김씨는, 이후 청년회 활동으로 발을 넓혔고, 지금은 나눔 마당의 책임까지 도맡고 있다.

"직장 이외의 활동은 안 해 봤는데, 요즘 세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더군요. 그동안 회사만 다니면서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 넓은 바깥세상을 보게 된 것 같습니다."

나눔 활동을 준비하다 보면 그만큼 시간적 제약이 따른다. 특히 대부분 주말 시간을 내는 것이라 책임자로서의 부담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시설에 나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가진 힘이 얼마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분들한테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느꼈죠. 장애우 시설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도 달라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참 뿌듯해 졌죠."

별과 빈곤 없는 세상을 위해 더 낮은 곳에 손을 내미는 청년들. 메마르고 황량한 광주에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젊은이들의 진취성, 우리의 사색과 실천에 달려있어”
[인터뷰] 김태진 ‘광주청년나눔센터’ 대표

   
 
  ▲ 김태진 '광주청년나눔센터'대표  
 
"보통 20대 대학생이나 젊은이들을 두고 불의에는 눈을 감고, 불이익에는 참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죠. '과연 그러느냐'는 것입니다.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흐름에 의해 개인주의가 철저히 길들여져 있는 것인데, 개인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김태진 '광주 청년나눔센터' 대표는 "20~30대 젊은이들의 숨겨진 역동성과 진취성을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며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는 문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 근거로, 촛불시위와 반북 반공 이데올로기의 극복을 들었다. 경쟁사회에 의해 나약하고 철저히 개인주의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세대보다 민족적 자존심이 강하고 진보적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

김 대표는 '몰래 산타'의 경험에 대해 "젊은이들은 고생스러운 것은 마다하고, 편하고 이기적인 것만 찾는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잘못 됐다는 것을 느꼈다"며 "20대 젊은이들에 대한 인상을 새롭게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젊은이들의 사회참여에 대한 욕구를 발양시켜 내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사색과 실천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한편으로 나눔 활동이 자기만족감으로 그치는 것을 경계했다. 장애우 시설 등 소외시설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의 근본적 문제가 단지 봉사자의 손에 맡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 빈곤이 대물림 되고, 사회적 양극화가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구조를 외면한 체 건네는 '손'이 자칫 '동정'과 '위로'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해외나 북녘 동포에 대한 동포애를 넓히는 것도 나눔과 연대의 소중한 방향점이 될 것"이라며 "많은 기회를 만들어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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