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진 깡통을 빛나는 그릇으로
찌그러진 깡통을 빛나는 그릇으로
  • 김경대 기자
  • 승인 2007.03.14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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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대안 교육현장③]광주동명고

일선학교 평가에서 공교육 앞서는 성과 보이기도
보통·특성화 교과 비율 8:2,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특성화 학교인 동명고 1회 입학생이었던 영훈(가명)이는 소위 ‘전국구’로 통하는 폭력조직의 조직원이었다. 어떻게든 아이를 바로잡으려던 부모는 동명고에 아이를 맡기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교장선생님의 ‘전담마크’로 그럭저럭 2학년까지 잘 버텨내는가 싶더니 급기야 사고를 치고 말았다. 옛날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같은 반 아이를 초죽음이 되도록 때리고 만 것.

기독교 학교답게 흡연, 이성교제, 폭력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던 학교는 교직원 회의에서 영훈이의 처분을 놓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결국 한 번만 더 믿어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영훈이는 그 후 정말 몰라보게 변했고 여기서 낙오하면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각오로 노력한 끝에 4년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총학생회장까지 지내기도 한 영훈이는 최근에도 학교를 외갓집 드나들 듯 찾곤 한다.

지훈 군도 거의 비슷한 케이스로 서울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이다. 지훈이 어머니는 “일반 학교에 갔더라면 이 아이는 계속해서 자신을 찌그러진 깡통 같은 느낌으로 살았을 것인데 다른 일반학교와 비교도 안 되는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신 선생님들이 찌그러진 깡통을 빛나는 그릇으로 만들어주셨다”며 “대장장이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한다”고 말했다.

▲ '멘토링 센터'로 불리는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장난스런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명고
전국 최초로 멘토링 프로그램 도입

이 같은 동명고의 성공적인 교육방식에는 전국에서 최초로 학교에 접목시킨 ‘멘토링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했다.

교사와 학생 간 멘토링 일지를 작성해 학생의 고민과 관심사를 상담하고 또래 멘토링, 선후배 멘토링 등 입체적인 유대관계를 통해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내고 있다.

일반 학교와 다르게 한 반(20명)에 두 명씩의 모듬(담임) 교사를 배치해 아이들과의 유대를 높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자가 학교를 방문한 지난 6일에도 대학 강의가 없는 날이라며 한 졸업생이 학교를 찾아 와 선생님들과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폐교된 송정 서분교를 사들여 1999년에 개교한 동명고는 초기 특성화학교들이 종교적 배경을 지니고 중도탈락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학교를 표방한 것처럼, 97년 학교설립 기준을 완화하기 위한 ‘고교설립준칙주의’가 발표되자 동명교회가 세운 전일제 대안학교다.

송산유원지 입구 어등산을 등에 지고 ㄱ자로 늘어선 아담한 교사(校舍)는 120여명(3개 학년 6개 반)의 학생들과 16명의 선생님들이 지내기에는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 5월15일 '스승의날'을 맞아 교사들이 전체 학생들의 발을 씻기는 '세족식' 행사. 학생들을 위해 헌진 봉사하겠다는 교사들의 의지가 담겨있다.ⓒ동명고
기독교 법인이 세운 전일제 대안학교

개교 초기에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탈락한 학생들이 주를 이뤘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학부모들의 대안교육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올해만도 40명을 뽑는데 92명의 지원자가 몰려 2:1을 웃도는 경쟁률을 보였다.

학교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종교유무가 입학의 장애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다만 심층면접(학생 40 학부모 10)과 기초학력(30), 산행면접(20), 봉사활동(10), 출결(10) 등의 전형방법에서 보듯 면접을 통한 학교적응력을 가장 중요한 입학기준으로 본다. 이는 아침묵상, 수요 성경공부, 부활절, 추수감사절 등 기독교와 관련된 일과와 행사가 많아 건학이념과 학교 운영방침에 거부감을 가질 경우 적응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영향 탓인지 농촌 지역의 목회자 가정 자녀들이 전체 학생의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기독교 가정 자녀들의 지원이 많은 편이다.

평균적인 지역별 분포는 광주·전남, 기타지역이 6:4의 비율이며 남녀 성비는 7:3정도. 전체 120명의 재학생 중 79명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으며 수업료는 일반학교와 동일하고 기숙사 비는 월 21만원 수준이다. 대안학교답게 보통교과와 특성화교과를 8:2 비율로 섞어 지도하며 해외테마학습, 지리산 종주 등의 현장체험 프로그램과 천연염색, 도자기 빚기, 다례(茶禮)교육, 태권도 등의 다양한 특기·적성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 특성화학습 프로그램 일환으로 매년 실시하고 있는 지리산 종주체험. 천왕봉 정상에 오른 동명고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동명고
사학 경영평가, 교육평가에서 우수학교로 선정

동명고는 지난 해 7월 광주시교육청이 주관한 사학 경영평가 결과 우수 사학으로 선정된 데 이어 2006년 학교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교육평가에서도 우수학교로 선정 돼 더 이상 대안학교가 공교육의 ‘대안(alternative)’ 개념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도 경쟁에서 앞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대학 진학이 대안학교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는 아니지만 지난 해 39명의 졸업생 중 28명(72%)이 대학에 진학해 학업 성취 면에서도 일반 학교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았다. 기독교 교육의 영향으로 포항 한동대나 한신대, 한세대 등 연관 대학 선호도가 높은 편이며 미 진학 학생들의 경우 특기 적성을 잘 살려 이른 취업을 나가기도 한다.

정종혁 교무부장은 “성적만을 놓고 볼 때 전체 학교에서 높은 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봉사활동 등을 통해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120명을 원으로 세우자”
[인터뷰]정소지 동명고등학교 교장

   
 
  ▲ 정소지 동명고등학교 교장  
 
점심시간이 되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급식실로 몰려 들어왔다. 먼저 식사를 마친 정소지 교장은 줄 지어선 학생들 사이를 지나면서 연신 아이들에게 말을 건다. 아이들도 교장 선생님을 전혀 어려워하는 기색 없이 농담도 하면서 되지도 않는 요구를 졸라대기도 한다.

정 교장은 “우리사회가 성장과 개발에 치중한 나머지 인간 중심의 사회적 가치가 무시되는 경향이 있어왔다”며 “학생 개개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자연친화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을 전수하는 것을 목표로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추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미 언론지상에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는 동명고만의 스승의 날 행사인 ‘세족식’은 선생님들의 마음가짐을 엿보게 한다. 교장 선생님부터 모든 교사들이 정갈한 마음으로 120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발을 씻기는 모습은 보기 드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는 것도 안 된다’고만 알았던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따뜻하고 융숭한 대접을 자신의 선생님들에게 받아볼 기회가 있었을까.

정 교장은 “아이들이 자기 목표를 찾아서 가게하고, 크든 작든, 잘나고 못났든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본다”라며 “120명을 일렬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원으로 세울 때 서로의 얼굴을 마주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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