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후손들의 무지와 탐욕
친일파 후손들의 무지와 탐욕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2.2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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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밝아오니]박지동 전 광주대교수

1894년의 농민혁명 후반부부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1904)을 거치는 동안 일제의 침략군을 아군(我軍)으로 호칭하며 생겨난 친일파 매국노들은 한반도에서는 진짜주인들을 하인이나 머슴으로 노예처럼 부려먹던 수탈자들이었다.

일본왕에게 충성하던 조선·동아 신문사주와 친일 경찰·군대·검판사들은 미점령군에 찰싹 붙어 친일역적의 신세를 구명도생하면서 일제에 이어 미국의 침략세력이 바라던 반공과 반통일을 '절대계명'으로 지키려고 아첨과 굴종, 자기 동포 탄압에 광분하였다.

입법·행정·사법의 삼권을 몽땅 틀어쥔 친일파 집단은 제4부 권력으로 그 꼭지점에 자리한 친일파 언론사의 지휘하에 매일매일 진실을 감추는 왜곡보도와 평등민주를 해치는 불공정 편파논설을 통해 공동체 전원이 역사에 무지하고 미래에 어두운 돼지의 삶을 이어가게 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상속 자손들은 물론 온 국민이 자주·민주의식을 잃고 진실된 역사에 소경이 되게 했다.

두 신문 상속자들의 반민주적 모르쇠보도 자세와 친일파 대통령 딸의 미련한 출세놀음도 모두 진실된 역사에 눈을 감고 탐욕에만 사로잡혀 있는 탓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민중 배반의 사례를 들어서 역사무지의 죄악을 반성하여 보고자 한다.

보도(保導)연맹 사건은 침략외세를 끌어들여 동포형제를 참살한 비열한 음모극의 대표적인 史例였다. 1949년 6월경, 6.25 침략전쟁을 예상한 미 제국주의세력과 친일파 무장세력은 전쟁이 터질 경우 적의 병력이 될 가능성이 있던 자주독립지향의 청장년 30 만여명을 “사상개조를 위해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사상전향자 조직'을 만들어 일괄 감시하에 두었다가 그해 연말부터 6.25후퇴에 임하여 전국의 경찰서별로 대부분을 학살하였던 것이다.

이 무렵 남한의 경찰과 군대는 일제 식민통치시기의 일본경찰 및 관동군세력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조선독립” 주장과 “친일파 척결” 구호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사활(死活)을 걸고 민족 자주독립세력을 살육(殺戮)하였다.

당시는 5.10 단독선거를 전후하여 봉기한 제주 4.3 항미 반독재의거에서 3만명 이상을 학살한 직후였기 때문에 이른바 ‘좌익’에 대한 적개심이 극도로 악화되던 시기였다.

이승만 친미세력과 김성수 한민당 친일파세력은 일제 식민지시기의 조선독립 억압조직이었던 대화숙(大和塾)을 본떠서 사상전쟁의 승리를 위해 “좌익사상을 멸종시킨다”는 명분을 내걸고 민족 자주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청장년 대다수를 사전에(민족해방 전투병력이 되기 전에) 전멸시키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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