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사회공학자들과 지역발전정책
소수의 사회공학자들과 지역발전정책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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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등등]김대성(행정학 강사)

‘민주주의에서 다중의 집합적 지혜는 소수의 사회공학적 재능을 뛰어넘는다.’ 노무현 정권의 국가발전 청사진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대목이다. 민주주의라는 자명한 이정표에 대해 이견의 여지는 없으나 민주주의의 실현방식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그래서 자문해 본다. ‘참여정부’를 지향하는 노무현 정권은 과연 어디에 해당할까? ‘다중의 집합적 지혜’는 공동체의 참여를 전제한다. 반면에 소수의 사회공학적 재능은 전문가 중심의 관료적 합리주의를 선호한다.

최근 몇 년간 이 지역 발전프로젝트들이 봇물을 이뤘다. 이른바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나주 혁신도시, 무안 기업도시, J프로젝트, 서남권종합발전계획,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등. 이 중 지역에서 발아된 발전계획도 있으나 이들 모두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권의 책임에 해당한다.

프로젝트 속에서, 따로 노는 지역정서

이들 계획에는 역시나 도시, 거점, 기지, 리조트, 단지, 지구, 구역 등 산업정책 용어가 등장한다. 그래서 사회공학적 재능을 가진 소수의 합리주의자들의 사고를 더듬는다. 그들의 관점은 그렇게 시작한다.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한탄하고,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통한 지역발전이라는 목표를 세운다.

산재한 지역 보고서를 모으고 지역유지와 지역출신 인사들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정책대안을 개발한다. 정치권과 재계 그리고 정부의 주요 인사를 만나 타당성의 제시와 함께 정치적, 경제적 지원을 호소한다. 이들의 ‘OK 사인’ 과 ‘긍정적 검토’는 대통령의 지역순방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지역을 ‘유토피아’로 전환시키는 축포를 터트린다.
지역발전을 위한 소수의 헌신적 사회공학자들을 탓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일을 접할 때마다 지역민들은 뭔가 허전하다. 진수성찬이 입에 넘어올 판인데, 소화제 구실을 하는 ‘침샘’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같은 생리적 불응에 대해 혹자는 정치권의 선심에 대한 지역민들의 의심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역민들의 반응은 자못 분명하다. 자신들의 선택이 ‘지역발전 대형프로젝트’라는 한마디에 묻혀버렸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광양만권 통합에 대한 여수, 순천, 광양 주민들의 생각은 각각 다르다. 무안반도 통합을 놓고 벌어진 무안과 목포 주민들의 해묵은 반목은 해소되었을까. 나주 혁신도시를 두고 광주시민들과 전남도민들의 생각도 다르다. 무안, 목포, 신안과 영암, 해남 주민들의 생각이 같을 수 있을까.

사회공학자들이여, 현장으로

소수의 사회공학자들의 열정은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합리적 사고틀 안에서 모든 문제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지역발전이라는 거대담론을 통해 지역을 일렬종대로 통합시키려고 시도한다. 더구나 경제적 인프라와 산업계획이라는 단일 가치체계를 동원한다. 이러한 노력이 성공할까?

국가정책과 계획은 갈등적 이해를 수반하는 ‘정치적 과정’이다. 때문에 소수의 합리적 사고에 기초한 국가정책은 득보다는 실이 클 수도 있다. 큰 것 한 건으로 작은 목소리를 소외시킨 까닭이다. 그래서 소수의 사회공학자들에게 진정 두려운 것은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터질 크고 작은 지역민들의 반대 여론이다. 미시담론이 전제되지 않은 거시담론의 횡포는 70, 80년대의 국가정책에서 보았듯이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이번 기회에 소수의 사회 공학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고향을 등지고 오매불망 끼리끼리 지역발전을 그리지 말고, 고향 사람들의 스토리들을 모으는 현장작업을 하라고 말이다. 그럴 때만이 이리저리 부는 정치적 풍향과 향후 다가올 예상 밖의 ‘난관’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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