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문턱에 서서
가을 문턱에 서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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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평]정규철 한국투명성기구 광주전남본부 공동대표
새벽녘이면 여름 내내 열어둔 창으로 서늘한 기운이 밀고 들어온다. 더위에 지친 심신에 무연히 감겨오는 한기가 상쾌하기 그지없다. 가난한 소시민들이 누리는 맑고 소박하고 평담한 삶은 자연의 섭리가 아닌가 싶다. 한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만해도 가을이 언제 오나 아득하기만 했는데 절서(節序)는 속일 수 없는지 베짱이 우는 소리가 애처롭다.

쌍춘년 윤달에 밀려 한가위가 저만큼 물러서 있는 탓인지 매스컴도 잠잠하다. 예년 같으면 추석물가동향이나 교통편 귀성예매 등으로 화제꺼리가 무성할 터인데 아직도 조용하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쉴 새 없이 터지는 대형 사건들로 말미암아 보통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어느 게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로 휘둘리는 일상이다.

'바다이야기' 파문이 도박공화국이라는 오명으로 일파만파 번져가고 있고, 한미간에 논의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를 놓고 양국정부가 명쾌한 해법을 내놓았음에 불구하고 재향군인회, 기독교총연합회, 사학수호국민운동본부, 한나라당 전 현직대표들이 나서서 치졸한 여론몰이를 일삼고 있는가 하면, 노조의 파업도 지칠 줄 모른다.

이런 와중에서도 징검다리 추석연휴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눈에 띤다. 월, 수 이틀만 연가를 쓰면 일주일을 통째로 놀 수 있어선지 유럽이나 미주지역 항공권이 매진상태라는 뉴스다. 장거리 항공권을 놓친 분들은 중국 등 동아시아권으로 발길을 돌리는 모양이다.

그런 연유로 추석특수를 노리는 상혼은 몰라도 교통대란은 수그러들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외지에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이 명절에 고향집을 찾던 갸륵한 정성은 이젠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가족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숙박지에서 차례상을 올리면서 오순도순 지낸다고 하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힘들게 벌어서 헤프게 쓴다는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해외로 나가는 것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꽉 짜인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혼자 떠나고 싶은 충동은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는 감정일 터이다. 전인미답의 세계를 탐험한다거나 우리와 다른 문명세계를 여행해보는 것은 한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밀도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2300여 년 동안에 열두 번 밖에 없다는 쌍춘년, 모처럼 맘먹고 떠나는 외국여행에서 세계화시대의 보편적인 가치나 조화를 발견하고 자신이 지니고 있던 인식체계를 새롭게 다듬을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세계문화를 동,서로 양분하여 이해하던 시절, 우리의 사상계는 '유럽중심주의' 견해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사조는 인류사의 긴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제국주의 물결을 타고 일시적으로 일어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는 지금 그리스, 로마의 고전 고대만큼이나 르네상스이전의 동양에 주목하고 있다.

한 때 '로마가 종교로 세계를 다시 한번 제패'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는 것 같았지만 중국의 황제를 끝내 개종시킬 수는 없었다. 유교적 정신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 모른다. 마테오.리치(Matteo Ricci)가 본색을 감추고 화광동진(和光同塵) 하려 했으나 그 유폐는 비루하게 되었다. 조선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茶山 역시 그가 쳐 논 그물에 걸려 고경을 치뤘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금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세계인의 이목이 중국이나 인도에 집중되었다고 들었다. 문화의 중심축이 동으로 기울고 있는 상서로운 조짐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사업이 본격화 될 전망이다.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역사가 동서간의 공동 번영을 다지는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

/정규철 한국투명성기구 광주전남본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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