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꼴통 스승은 어디에 있는가?
내 꼴통 스승은 어디에 있는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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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대한민국]조재호 자유기고가
사람을 변화시킨 책 한권? 마치 번개를 맞은 듯 충격을 주는 순간을 제공한 책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있다. 관운장에게는 "춘추", 레닌에게는 "자본론"처럼. 지금은 삼십대 중반백수, 사회불평불만세력인 나에게도 그런 책이 있다. [감옥으로부터 사색]이다.

스무살 즈음, 책을 읽은 후, 내가 걷고 있는 금남로 땅이 달라보였다. 그 아래에 흐르는 지하수, 풍부한 역사를 보았다. 내가 만난 사람들이 달라졌다. 가장 아랫동네 이웃에게서 '어머니만 아는 슬픔'을 느꼈다. 이즈레미 묵방을 몸에 그린 '사람'들, 노동자 농민들. 우리시대 가장 큰 아픔에 대해서 책은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었다. 단순히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과 한겨울 온몸으로 '연대'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만을 느끼기에는 그 책의 범주가 너무 넓었다. 부드러운 외양에 날카로운 사회과학적 시선들을 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감옥과 그 바깥은 팽팽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내게 사람 자체를 변화시킨 스승이었다. 만약 [스승] 이란 것을 학교연줄로 기계적으로 연결 짓는 구역질나는 습속을 벗고 엄밀히 이야기 한다면, 그는 내 스승이었다. 이후 어떤 현상이 있을 때마다 그는 나직히 충고했고 질타했다. 어떤 상황이 닥치면 나는 "그분은 어떻게 했을까?"자문을 구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나는 [감옥…]을 폈다. 신기하게도 그 속에 답은 언제나 있었다. [빨갱이]짓 때문에 무기수로 살면서 오히려 감옥을 '학교'라 여기는 꼴통스승! 이후 그분은 내게 사회현상 해석을 제공해주는 틀이었고 개인적인 아픔도 위로해주며 부드럽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스승이었다. 그 온화함에 농축된 삶의 결들과 이웃들의 아픔은 시간이 갈수록 새롭게 내게 다가왔었다.

그러나, [감옥으로부터사색]이 아닌 '감옥' 바깥에서 "신영복"선생을 이시대의 '진정한 스승'이니 하는 보수언론의 나팔소리는 내게 역겹다. 얼마 전 성공회대 퇴임식에서는 좌우인사들 할 것 없이 모두 찾아와 그분의 은은한 선비정신을 찬송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혀가 끌끌 차진다. "통혁당"사건으로 이십년 이십일을 '인생학교'에서 보낸 분에게 자본가의 '축사'라니. 더구나 자신의 가장 중요한 (감옥)'모교'라는 곳에서 젊은시절을 보낸 분이 또 '학교퇴임식'을 하나?

그간 가끔 참석한 선생의 강론장에서 나는 선생이 '감옥'이야기와 추상적인 '인간관계'이야기 외에 들은 것이 없었다. 그분이 감옥을 나온 이후 90년대 남한사회에 벌어진 일을 생각해보라.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었다. 소련이 무너졌고, 자본주의는 전지구를 지배했다. 미국의 독주는 계속되었고 일방적침략이 벌어졌다. 민주화운동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미완성의 '총구'로 남아있는 과제가 수두룩했다 그러나 신선생님은 '인간관계'론만을 말씀하셨다.

한국사회에서 '인간관계'를 개선한다는 의미가 기실 학벌, 지연 연줄로 사람 좋게 보이는 것 외 아니지 않는가? 조중동 모두가 그분을 '칭송'했다. 동시에 진보진영에서도 그분을 존경하는 동안, 그분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러나 나는 '감옥'에서 편지를 보낸 신영복, 그 스승님이 삶에서 건진 '당파성'개념을 지금도 유효하게 여긴다 - 그분이 인용하신 공자의 말씀. "마을의 불선한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지 않고, 선한사람에게서 사랑받지 않는다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저러나 우리시대 좌파 선배님들은 왜들 그렇게 점잖하실까? '교수'님 직함 붙이고 하나마나한 좋은 멋진 말씀만 하시는 도인 외에 스승은 없나? 나이가 들면 그런건가? 다른 모든이에게 존경받고 싶은 욕구? 너는 그렇지 않을 자신 있냐고? 허나 우익 꼴통 할아버지들보니까 자기돈 들여서 데모도 하시고, 적극 나서더라. 우리의 진보진영 선배와 스승님들은 늘 고고한 백조 같은 분들뿐이 없는 듯하다. 물론, 안다! 우아한 백조가 다리를 어떻게 휘젓고 있는지.

어디 있는가. 꼴통 스승님. 자본이 판치는 마을에서 미움을 받고, 아랫동네 이웃에게 뜨거운 연대를 하는 꼴통 스승님? 성적 소수자를 옹호할 '나잇값'못하는 스승님?

/조재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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