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
야스쿠니 신사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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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등등]김상윤 지역문화교류재단 상임이사
예순한번째 광복절이었던 지난 8월 15일은 왕 짜증으로 온 머리가 지끈거리더군요.

굳이 사람의 생애에 빗대지 않더라도, 60년의 세월이면 역사적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국면을 열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일본의 시간은 어찌된 셈인지 자꾸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날 이른 아침, 고이즈미수상은 연미복 차림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합니다. 방명록에는 '총리대신 고이즈미'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같은 날 이른 새벽 4시 반쯤, 대만 원주민들은 수메이라는 젊은 여성 입법의원을 대동하고 야스쿠니신사의 정문 앞까지 돌진하여 조상들의 영혼을 돌려달라면서 신사 진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경찰의 제지로 신사에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대표격인 수메이는 메가폰을 들고 계속 일본에 경고합니다.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일본의 광적인 우익들이 흥분하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들은 수메이의 암살을 기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현장에는 한국사람과 일본국민도 다수 합세하고 있습니다. 저녁에는 우리나라에서처럼 촛불행사가 열립니다. 반전·평화를 염원하여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아시아지역민들의 연대운동을 다룬 KBS의 일요스페셜에 나오는 장면들입니다.

야스쿠니 신사(神社)는 메이지유신 직후인 1869년에 동경 한복판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일본 전역에 8만개 정도의 신사가 있다는데, 막부군과의 싸움에서 숨진 사람들을 '호국의 신'으로 제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야스쿠니신사는 그 많은 신사의 대표격이 되겠지요.

월드컵이 한창이던 지난 6월, 독일 젊은이들이 독일국기를 흔들어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독일국민들이 2차대전 이후 자기나라 국기를 마음대로 흔들어보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에 대한 죄의식과 참회 때문에 독일은 아예 국가주의 자체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일본의 당당함 아니 이 뻔뻔스러움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진주만을 습격합니다. 소위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것이지요. 불과 두달 뒤에, 라이샤워는 후일 '라이샤워비망록'이라 불리는 문건을 작성합니다. 라이샤워는 비망록에서, 이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난다는 것과 전후 공산주의와 대결하는 국면에 서 절대적으로 일본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을 정확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공망을 구축하기 위해서 일본의 자존심을 건들지 말 것이며, 천황을 결코 전범으로 처벌해서는 안되고, 더 나아가 당연히 천왕제를 존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전후 전범처리는 라이샤워비망록이 권유한대로 도죠 히데키를 A급 전범으로 처리하는 선에서 끝나고 맙니다. 당시까지 천황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었습니다. 일본국민들은 신국의 백성이었던 셈이지요. 천황이 전쟁의 책임이 없는데 그 백성인 일본국민들이 전쟁의 책임을 느끼겠습니까? 독일사람들의 뼈저린 반성과 달리, 일본사람들이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의식의 배경에는 사실 미국이 버티고 있는 것이지요.

A급 전범인 일본군 총사령관이자 수상이었던 도죠 히데키의 손녀가 한국에 왔습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후 야스쿠니신사에 '신으로 모셔진(!)' 아버님의 혼을 되돌려 받으려는 이화자씨와 대만 입법의원 수메이에게 도죠의 손녀는 야무지게 일갈합니다.

"당시 그분들은 일본 국민 신분이었고, 일본은 그들을 차별하지 않고 일본사람과 똑같이 신으로 모신 것인데, 그것이 잘못인가요?"

그날 이후 저는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습니다.

/김상윤 지역문화교류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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