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스승의 아름다운 퇴장
참 스승의 아름다운 퇴장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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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평]신일섭 호남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교수
"참된 삶이란 무엇일까", "참된 인생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끔 일상의 삶에 지쳤을 때 혼자서 내뱉는 물음들이다. 또한 답답한 현실에 무기력한 자신을 자조하면서 되묻는 내 자신의 독백들이다. 그렇다고 어느 것이 최상의 삶이요, 인생이라고 확언할 수도 없다. 사람의 얼굴이 각기 다르듯이 삶의 양식이나 태도, 인생의 길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 지치고 혼란함 속에 빠졌을 때 필자는 책을 뒤적이며 역사속의 인물들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노력해본다.

얼마 전 정년퇴임한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의 기사가 무기력에 빠진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신 교수는 일찍이 서예가로서 뿐만아니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나무야 나무야]란 책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육군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어두웠던 군사독재시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한지 20여년만인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영어의 몸에서 자유로운 몸으로 되었다. 그 다음 해인 1989년부터 서울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깊은 학식과 덕망을 후학들에게 가르치다가 이번에 정년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니까 대학교수 생활을 꼭 16년하고 정년퇴임을 맞이한 것이다.

신영복 교수의 정년퇴임 소식이 인터넷 신문이나 중앙지에서 박스기사로 많이 소개되어 나오기도 했다. 여느 퇴임식처럼 근엄하게 치러진 것이 아니라 캠퍼스 노천광장에 마련한 작은 축제와 같은 모습으로 치러졌다고 한다.

결코 길지 않은 교수생활이었지만 수십년간 쌓인 내공의 지식을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퇴임하는 신 교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주었다. 신 교수를 존경하고 좋아하여 성공회대학에 입학했다는 제자 윤도현 가수의 노래로 시작하여 그 외 유명 가수의 노래, 동료 교수들의 합창, 여러 유명 지인들의 이야기로 엮어졌다. 필자는 그 기사를 보면서 "우리 시대 참 스승의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신 교수는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삶을 살아왔다. 역경의 삶 속에서도 자신의 올곧은 길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살아왔다. 그 분의 삶과 정신, 생활 그 자체가 바로 살아있는 지식이자 지혜이며 교훈인 것이다. 특히 동양의 고전에서 얻은 그 분의 지식과 지혜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었고 현실에 대한 분노보다는 바다와 같은 넉넉함으로 관용과 이해의 정신을 가지라고 했다. 그는 평소 함께 하는 삶을 강조하면서 "한 그루 나무가 되지 말고 더불어 사는 숲이 되자"고 말했다.

그 분의 퇴임식장을 찾아온 인사들을 보면 그의 폭넓은 사상을 더욱 확인할 수 있었다. 좌파 지식인과 여야 정치인에서 재벌 대그룹의 총수에 이르기까지 신 교수의 퇴임식을 찾아와 축하하는 모습이었다. 너, 나 구분하지 말고 모두 함께 가면서 좋은 길을 찾아보자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 요즘 같은 황폐화된 대학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은 많아도 영혼을 깨우치게 하는 참된 스승은 드물다.

대학생들도 그 전과 달리 많이 변화하였다. 지나온 삶의 역사를 되돌아보지도 않고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는 요즘의 대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불과 20년 전에 일어난 민주항쟁의 역사적 기억도 잃어버린 세대들이다. 이 어려운 시대 신영복 교수는 참 스승으로서 몸소 많은 가르침을 주다가 가야 할 때 조용히 아름답게 물러난 것이다. 그 분의 떠나간 빈자리가 오늘따라 더욱 크게 느껴진 것은 비록 필자만의 심정은 아닐 것이다.

/신일섭 호남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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