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의젓한 선비 닮은 계곡에 발 담그니
맑고 의젓한 선비 닮은 계곡에 발 담그니
  • 장갑수
  • 승인 2006.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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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의 아름다운산행]현성산·금원산 (965m·1352.5m, 경상남도 거창)
마을 담벼락에 피어 있는 능소화가 매혹적이다. 곧고 단정하게 줄기를 뻗은 능소화는 여름이면 주홍색의 꽃을 피운다. 주먹만한 크기로 잎을 크게 벌린 깔때기 모양의 꽃송이는 수려하되 우수가 담겨 있다.

꽃이 시들어 땅에 떨어지는 다른 꽃에 비하여 능소화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낙화를 한다. 아름다운 이별을 고하는 듯하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이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서만 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능소화를 양반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금원산자연휴양림에 도착하기 직전, 어여쁜 처녀가 하얀 속살을 드러내주는 것 같은 미폭포가 길가에서 미소를 짓는다. 미폭포는 평소에는 폭포라고 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수량이 적은데, 오늘은 제법 폭포다운 위용을 갖추었다. 미폭포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현성산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청량하다. 화강암 암릉이 이어지고 여기에 소나무들이 어울려 있다.

아기자기한 바위산과 중후한 육산의 조화

▲ 유안청 제 1폭포 ⓒ장갑수 희끗한 바위는 녹색바다에 뜬 배와 같다. 금원산자연휴양림이 들어서있는 유안청계곡이 굽이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금원산과 기백산 정수리 부분은 구름안개로 덮여 있고, 주능선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능선들이 한옥의 서까래처럼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한옥은 산을 닮았다. 산에서 태어나 산모양의 집에서 살다가 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과 함께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인생사였다. 계속되는 바위들은 아기자기하기보다는 두루뭉실하다. 한 몸이었을 바위가 1m 너비로 둘로 나뉘어 길을 내주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집채보다도 훨씬 큰 바위들이 능선을 가로막을 때는 돌아가기도 한다. 커다란 바위 위에는 삿갓 모양의 작은 바위가 얹혀 있어 귀엽기도 하다. 이렇듯 바위가 많은 현성산은 전형적인 육산을 이룬 금원산·기백산과 대조를 이룬다. 여름을 즐기는 잠자리가 여기저기에서 춤을 춘다. 깔끔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현성산 정수리에 서자 사방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앞 다투어 다가온다. 유안청계곡과 지재미골을 가운데 두고 한 바퀴 돌아가는 현성산-금원산-기백산-오두산이 형제처럼 다정하다. 덕유산 능선이 유장하게 펼쳐지고, 수도산과 가야산도 당당하게 다가온다. 거창과 합천 땅을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산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들판과 마을을 품는다. 아래로 위천면의 들판이 싱싱하고, 더 멀리 거창읍의 건물들이 자기존재를 알려온다. 산속의 별천지처럼 자리 잡은 지재미골의 분지에는 밭과 서너 채의 민가도 있다. 한때 50여 가구가 살았다는 지재미마을이다. 시원한 바람이 산이 된 나그네에게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북쪽으로 필봉 가는 길이 갈리는 970봉을 지나면서부터 흙길이 시작된다. 금원산 권역에 들어서자 바위산의 탈을 벗고 흙산으로 바뀐다. 중간 중간 문바위로 내려가는 길을 만난다. 현성산의 소나무 숲도 활엽수림으로 바뀐다. 나뭇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소리가 점점 커진다. 빗속을 걸으며 걷기명상을 한다. 내면을 바라보게 하는 빗소리는 명상음악이다. 까치수염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채 한다. 사방에서 다가오는 산 그림 ▲ 서문가 바위 뒤로 보이는 덕유능선 ⓒ장갑수
금원산 정상에 서니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서서히 그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끔씩 보여주는 주변의 산풍경이 진한 감동을 가져다준다. 무엇보다도 금원산의 모체인 남덕유산과 향적봉까지의 덕유능선이 파노라마를 이루며 유장하게 펼쳐진다.

남덕유산에서 남동쪽으로 달려오던 능선은 월봉산을 솟구친다. 월봉산을 지난 산줄기는 동쪽으로 금원산을 일구고는 기백산·오두산과 현성산으로 양 날개를 펼친다. 월봉산을 지난 산줄기는 남쪽으로 이어져 거망산과 황석산을 일구었다. 남덕유산 남쪽의 백두대간에 솟은 백운산과 지리산이 아득히 다가오고, 가야산·수도산·의상봉·황매산 등 경상남도 함양·거창·합천에 솟은 산들이 산 그림을 그린다.

동봉으로 가는 길가에 다소곳이 핀 말나리가 미모를 과시하고, 비비추도 금방 꽃망울을 터뜨릴 기세다. 금원산에서 동봉을 거쳐 아름다운 유안청폭포와 자운폭포가 있는 유안청계곡 쪽으로 하산을 한다.
시원한 물소리가 땀방울을 씻어준다. 유안청 1폭포 앞에 선다. 20m 높이에서 쏟아지는 흰 구슬이 나그네의 가슴을 말끔하게 씻어준다. 내 가슴을 타고 흐르는 폭포수가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게 해준다. 폭포 근처를 울창한 숲이 감싸고, 녹음 짙은 나뭇가지가 폭포수를 살짝 덮으면서 깊은 맛을 더해준다.

유안청 1폭포에서 5분 정도 내려와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위에 선다. 아래로 50m에 이르는 유안청 2폭포가 바위 한쪽을 감싸며 폭포수를 만들어낸다. 폭포수 위로 단풍나무가 잎을 내민다. 폭포 아래에서 바라본 유안청 2폭포는 하얀 실타래를 길게 풀어헤친 것처럼 굽이친다.

계곡의 깔끔한 반석과 맑은 계류는 주변의 소박한 숲과 어울려 고즈넉하고 그윽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거침없이 흘러가는 유안청계곡이 욕망에 휘둘려 사는 나그네의 가슴을 해맑게 해준다. 유안청계곡이라는 이름은 조선 중기 이 고장 선비들이 공부하던 유안청이 자리한 골짜기에서 비롯되었다. 유안청이란 유생을 이르는 말이다. 맑고 의젓한 계곡의 품세가 기품 있는 선비의 기상이다.

   
▲ 자운폭포 ⓒ장갑수
계속되는 반석은 자운폭포에서 절정을 이룬다. 거침없이 쏟아지던 폭포는 중간에 돌확 모양의 옥빛 탕에 잠시 머물렀다가 완경사의 폭포 하나를 더 만들어낸다. 설악산 십이선녀탕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 억겁의 세월 동안 물이 흐르면서 붉은 빛깔로 변한 화강암 위로 쏟아지는 물결모양이 붉은 노을 바탕에 흰 구름이 떠다니는 것 같아 자운(紫雲)폭포라 불렀다.

유안청계곡의 물소리에 취하여 걷다보니 금원산자연휴양림 입구 선녀담에 도착해 있다. 깔끔한 선녀폭포 아래에 넓게 형성된 선녀담의 운치에 취하여 발을 담군다. 나도 역시 유안청계곡의 선비가 된 것 같다.

*산행코스
-제1코스 : 미폭포(1시간 20분) → 현성산(1시간 10분) → 문바위 갈림길(1시간 20분) → 금원산(1시간 10분) → 유안청폭포(40분) → 금원산자연휴양림 주차장(총소요시간 : 5시간 40분)
-제2코스 : 휴양림 주차장(40분) → 유안청폭포(1시간 50분) → 금원산(1시간) → 시영골 갈림길 안부(40분) → 기백산(1시간 50분) → 용추사 입구 (총소요시간 : 6시간)

*가는 길
-대전-통영고속도로 지곡나들목을 빠져나와 거창·안의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안의면소재지를 지나 무주·거창 방향으로 3번 국도를 따라가면 마리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달리다보면 금원산자연휴양림 이정표가 중간 중간 서 있다. 위천면소재지에서 좌회전하면 휴양림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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