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同情)과 증오(憎惡)
동정(同情)과 증오(憎惡)
  • 김만식
  • 승인 2006.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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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불쌍한 나라 불쌍한 국민
동정이란 남의 불행이나 슬픔 따위를 자기 일처럼 생각하여 가슴 아파하고 위로하는 것이고, 증오란 몹시 미워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동정과 증오는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살다보면 동정이 가는 일도 있고, 증오의 불길이 솟구치는 일도 있다.

내가 동정과 증오의 감정이 끓어오른 것들 가운데 대표적인 몇 가지만 얘기하려고 한다. 현재와 미래의 문제도 되기 때문이다.

동정이 가던 일

1948년5월10일 초대 국회의원선거 때 내 고향 충남 아산은 훗날 대통령을 하신 윤보선선생을 비롯하여 여러명이 후보로 나왔는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30대초반 나이인 서용길선생이 당선되었다.

윤보선선생은 고향에서 낙선한 후 2대국회의원 선거 때(1950년5월: 이때는 임기가 2년) 서울시 종로구에서 당선되었지만 홍순철선생은 아산에서 두 번이나 낙선하고도 세 번째 출마했다.

그 당시 나는 중학생시절인데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불쌍하다 홍순철”이라는 말을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입에 오르내리더니 세 번째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장군의 아들 김두한선생에 대한 것이다.

그 분은 정치1번지 서울 한복판인 종로구에서 당선한 후 오랜만에 1965년 서울 용산구 보궐선거에 출마했는데, 남정초등학교운동장에 청중들이 많이 모였다.

김두한선생이 “여러분 제가 김두한입니다. 김옥균선생이 저의 할아버지이고, 만주벌판에서 독립군을 이끌고 일본군과 싸우시다가 같은 민족의 총탄을 맞고 돌아가신 김좌진장군이 저의 아버지입니다. 저는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에 일본놈들한테 집에서 쫓겨나 초등학교 2학년도 못 다니고 다리 밑에서 먹고 자며 이 집 저 집 문전걸식하고 살았습니다.” 라고 눈물겨운 사실을 털어 놓으니까 청충들이 한 마음이 된듯이 박수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더니 쟁쟁한 거물들을 제치고 무난히 당선되었다.

나도 물론 김두한선생에게 투표를 했지만 1966년 정일권 국무총리를 비롯한 장관들이 참석한 국회에서 김두한의원은 정부에 대한 질의도중에 정부가 너무 썩었다며 탑골공원화장실에서 비니루주머니에 담아 온 똥물을 국무위원석에 뿌리는 바람에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똥물세례를 받았다. 김의원은 그 사건 때문에 구속된 후 정치계를 떠나게 되었다.

그렇지만 박정희군사정권은 1962년 워커힐사건과 증권파동 새나라차(일본)와 빠징꼬(회전당구대:일본) 수입 등 4대의혹사건으로 정치자금을 만들더니 1964년 시멘트와 밀가루 설탕을 싸게 수입해서 몇배나 비싸게 팔아 삼분(三分) 폭리사건을 저질러 정치자금을 만드는 등 부정부패가 심한 것은 사실이며, 김두한의원같은 배짱이니까 국회에서 정부에 공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김의원의 행동을 속시원하게 생각했다.

증오의 불길

그리고 1973년8월 중앙정보부요원들이 김대중선생을 일본에서 납치하여 바다 속에 수장시켜 근거도 없이 만들려던 사건이 터졌을 때 나도 모르게 박정희세력을 싹 쓸어버릴 수 없을 까 하는 생각이 치밀었다.

또한 1979년12월12일 전두한 노태우 소장 등의 군사반란에 이어 1980년5월18일 광주민주화시위를 폭도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며 많은 사람을 학살한 5공세력과 군부가 발표한 대로 폭도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으로 그대로 신문에 게재한 신문사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권력을 위해서 국민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도 더 가볍게 여긴 놈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두환 노태우 등의 5공화국 군사독재시절 독재의 앞잡이 하던 민정당과 박정희 군사독재시절 독재의 앞잡이 하던 공화당이 소수세력인 김영삼 통일민주당과 합당하여 민자당이라고 하더니 얼마 후 신한국당으로 또 한나라당이라고 개명하였다.

이렇게 얼굴에 분칠만 해놓은 한나라당은 김대중정부가 개혁을 추진하며 남북화해와 교류협력 평화공존과 평화통일 정책을 추진하니까 반대를 위한 반대를 위해 궤변과 선동 선전을 할 때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하여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심심하면 대구와 부산에 몰려가 어린아이들이 고자질하는 식으로 김대중정부를 헐뜯는 궤변과 선동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지역갈등을 심화시키고 지역주의를 고착화시키는 저런 정치인들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활개치고 있는 것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미웠다.

그뿐인가 노무현정부가 개혁을 추진하자 위기를 느낀 한나라당은 2004년3월12일 국회과반수의석을 가진 다수의 힘으로 대통령을 쫓아내려고 불법 부당하게 탄핵안을 가결하는 꼴은 미친놈이 춤을 추는 것같이 보였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총칼로 권력을 잡은 공화당과 민정당이 줄기이고 바탕인데 별 수 있겠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그 솜씨를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며 미움이 파도같이 밀려왔다.

그 아버지에 그 딸

거기에 더하여 2006년5월31일 지방자치선거에서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기질의 한나라당이 압승한 것은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세력의 궤변과 감언이설 및 선동선전의 결과라고 생각되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미운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왜 국민들이 그렇게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국민들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하는 생각이 치밀어 오르며, 이승만독재12년과 군사독재32년이 지속된 것도 따지고 보면 국민 대다수가 독재의 궤변과 감언이설 및 선동선전에 끌려간 결과이며, 그것도 모자라 군사독재의 대부인 박정희소장의 딸이 이끄는 한나라당에 또 끌려가고 있으므로 '불쌍한 나라 불쌍한 국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나라당만 반대하는 속에서 부정부패의 온상인 사립학교법을 개정했는데 박근혜한나라당대표가 5·31 지방선거전에 다시 개정하겠다고 공언한 오기(傲氣)를 그냥 흘려버릴 일이 아니다.

미소 속에 총칼로 민주국가를 뒤집어 엎어버린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들은 수구정당인 한나라당이 아무리 사탕발림을 한다고 해도 줄기와 바탕이 군사독재이고, 조선 중앙 동아 3대수구신문이 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신문창설자가 친일파이며, 군사독재에 기생하고 찬양했다는 것을 안다면 숨겨져 있는 줄기와 바탕을 버릴 수 없어 개혁과 진보를 추진하는 정부와 여당을 반대하며 궤변과 감언이설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승만 독재와 군사독재 44년간 기생했던 수구세력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학계 등 각 분야에서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여러 가지 수단으로 방해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느 부분만 보지 말고 우리나라의 과거역사와 우리가 가야 할 역사의 방향 전체를 보는 지혜가 있어야 정의의 길이 보인다.

남북교류협력과 국가보안법개폐 등 개혁추진 및 동북아균형자역할을 ‘좌파 친북 반미’라고 붉은 색칠하며 미국에 아부도 하는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2006년6월5일
김 만 식 (평화통일시민연대 회원
시집『박통이 최고라네 』『산문집 대통령은 아무나 하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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