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대기와 불안감
줄대기와 불안감
  • 채복희
  • 승인 2006.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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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 눈] 채복희 편집장

1986년 3월27일 태어났으니까 올해 성년을 맞은 딸이 31일 처음으로 선거를 치른다.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서울 소재 대학 입학 후 주소지를 서울로 옮겼기 때문에 서울시장과 제가 사는 광덕구청장, 그리고 시, 구의원을 뽑게 된다.

지난달 쯤 "이제 유권자가 됐네" 말을 듣고 "얏호, 신난다. 첫 선거다~"라던 딸에게 엊그제 슬며시 "시장 누구 찍을래?" 해보았다. 과제물이니 발표니 하면서 꽤나 바쁜 척 한 터였다. "글쎄…"하고 말꼬리가 흐려지더니 금새 "누가 좋아?" 한다. "근데 너 투표지 몇 장이나 되는 줄 아냐?" "아니요…크크." "6장이나 되며", "어떤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을 뽑는 선거"라 알려주면서 "어쩔래? 가서 찍을래?" 했더니 "당근 찍어야지" 라는 명쾌한 답장이 날라온다.

첫 투표 19살, 누굴 찍을까

딸의 역사 의식이나 가치관, 또는 세계관 들은 아직 미숙한 편이다. 혹시라도 요 며칠 사이 부쩍 성장했다면, 딸아 좀 미안하다. 공개적으로 흉보고 있으니까. 제1야당의 여성 대표 얼굴이 흉기에 다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 관심이 훨씬 커질 수도 있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막 통과한 초짜 유권자가 지방선거 후보 면면을 살펴보는 안목을 갖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대선인 경우는 좀 다를 것이며, 또 광역자치단체장 선까지야 관심의 영역으로 끼어들 수는 있겠다. 그러나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보이는데다 숫자까지 많은 기초의원 후보들을 점검하는 일은 리포트 쓰기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딸은 신입생 시절, 같은 과 학우가 "5.18 그거 조선시대 일어난 사건이야?"라고 했던 말을 들려준 적이 있다. 농담이 아니고 실제 그 학생의 역사관은 거의 빵점 수준이었던 듯싶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당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불과 26년 전의 현대사를 모르다니, 그러니 지방선거에 얼마나 관심이라도 있을까 우려가 솟는다.

독일 같은 국가는 사회참여, 정치, 역사 의식 등을 고양시키기 위한 시민재교육 프로그램을 정부 지원으로 운영하는 나라다. 시민단체가 설립해 운영하지만, 재정은 전액 국가가 부담하며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다.

강사들은 모두 최고 수준의 석학들을 초빙해 프로그램의 권위가 높기 때문에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참가율이 대단히 높다고 한다. 혼자 알아서 지방선거 후보 연구를 해야 하는 우리나라 19살 초짜 유권자는 앞으로도 특별히 누가 가르쳐 주는 일 없다면 알아서 배워가든지, 아니면 "투표는 왜 하는데?"하며 휴일을 즐기게 될 것이다.

투표율이 낮으면 누가 좋나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은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언론매체를 통해 인물에 대한 정보를 얻으며 TV토론을 지켜보면서 판단의 근거를 찾고 각종 인쇄물을 보며 누구를 찍을 것인가 생각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매체들이 매일매일 생산해 내는 기사들을 보면 자칫 선거냉소주의와 무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인 내용들이 많다. 가급적 투표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의도를 숨기고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일어난다.

투표율이 낮으면 누가 좋을까. 만약 그가 어떤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면 '꼭' 한 표 행사하러 나가지 않을 리가 없다. '누구'가 '꼭' '돼야만' '내'가 '좋은'데 왜 찍으러 가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오나. '누구'와 '이해당사자'는 '좋지'만 '그 외'는 찬밥신세 되기 쉽다.

공복(公僕)들이 될성부른 후보에 줄대기가 성행한다고 한다. 뚜껑도 열어보기 전에 판세가 보이네 어쩌네 하는 광주의 줄대기는 아마 너무 길어 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 아닐까. 앞줄에 선 이들은 좋겠지만, 끝이 안보이는 뒷줄은 '그 외'가 될지도 모르니까 대긴 대면서도 불안감도 점점 커질 것 같다. 이래저래 착잡한 선거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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