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 정지아
  • 승인 2006.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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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평]정지아 소설가
대여섯 살 무렵, 초가집에 살았다. 벌레가 많긴 했으나 초가집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무엇보다 자연과 어우러진 초가집은 내 문학적 감성의 원천이었다. 몇 년 뒤 하루아침에 초가집이 사라졌다. 새마을 운동이라나 뭐라나. 동네 집들은 일제히 울긋불긋 싸구려 인공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다. 돈이 없으니 나중에 바꾸겠다고 해도 공무원들은 억지로 돈을 빌려주며 지붕을 바꾸게 했다. 그것이 내게는 첫 독재의 기억이었다.

1,2,3 공화국을 겪은 우리는 어려서부터 관(官)이 혹은 어른이 혹은 선생이 시키는 일은 무조건 해야 한다고 교욱받으며 성장했다. 나의 의사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얼마 전 타계한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은 부모에게든 어른에게든 대꾸할 수 있는 권리,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의 생각, 나의 필요, 나의 결정,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모든 표현 앞에는 '나'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언젠가 로마에 갔을 때 반쯤 허물어진 공회당을 보았다. 이천 년 전, 로마의 시민들은 그 공회당에 모여 중요한 사안은 토론하고 거수로 결정을 했다. 그곳에서는 어떤 사안에 대하여 누구라도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로마에서 말 잘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수사학이 발달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불행히도 현대사회에서는 로마식의 직접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대신 도입된 것이 간접 민주주의다. 한 마디로 로마처럼 매 사안마다 직접 투표를 하기 어려우니, 그 일을 대신할 사람들을 우리 손으로 뽑자는 것이다. 독재의 시대가 끝난 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까지 가능하게 했다. 지연, 학연 등의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일소된 것은 아니지만 예전 같은 금품 선거도 사라졌고, 정권의 개입도 거의 사라졌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선택과 참여인 것 같다.

이번 5.31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사상최저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치권에 대한 환멸과 무관심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낮을 거라는 예측이다. 독재를 경험한 세대는 어쩔 수 없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독재의 억압이 하다못해 학생들의 교복이나 머리, 교칙에 이르기까지 미친 까닭에 독재에 대한 저항은 생존의 몸부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고통 없이 자라난 젊은 세대들에게 정치란 남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질 것이 당연하다.

언젠가 영국의 선거제도를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수상 선거를 앞둔 무렵, 각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어른들의 선거를 똑같이 모방하는 것을 보았다. 학교별로 당별 대표를 뽑고 똑같은 공약을 내걸고 몇 차례의 정책발표회를 갖고 직접 투표까지 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대체로 실제의 선거와 일치한다고 한다. 어느 중학생이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를 대표하는 학생에게 노동당의 복지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 기자 이상의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교육이 영국이라는 나라의 민주주의를 가능케하는 힘인 것이다. 학생이든 시민이든 자연스레 민주주의의 권리와 의무를 체득하게 되지는 않는다. 사회에 나온 이후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수학공식을 외우게 하는 것보다 민주시민으로서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 학교교육의 더 중요한 임무가 아닐까. 젊은 세대의 무관심을 개탄하는 신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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