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 김만식
  • 승인 2006.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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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역사를 모르면 속는다
아직도 박통이 최고래요

며칠전 친구가 나를 만나자마자 박정희전대통령이 보리고개를 없애서 잘 살게 했다며 아직도 박통이 최고라고 터무니없이 부풀려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세상모습을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장면민주정권이 계속 되었으면 자유와 인권을 누리며 일본한테 식민지배상금으로 박통보다 5배나 더 많이 받아 경제개발해서 보리고개를 더 잘 넘을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며 빙그레 웃었다.

그 친구는 나를 만날 때마다 “또 민족과 국가의 발전 역사의식과 역사교육 역사정의와 사회정의 타령만 하나”라고 했었는데, 어느새 나한테 물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미소가 흘렀다.

그런데 16세기 중반까지 천동설(天動說 : 지구중심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행성의 하나로 자전하면서 태양주위를 공전한다는 지동설(地動說 : 태양중심설)을 제창한 후 오랜 세월 시비가 벌어졌다.

그런 결과 17세기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주장했다고 하는데, 나도 갈릴레이 같은 정신자세로 박통을 살펴보려고 한다.

국민들이 박정희 전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똑바로 알아야 민족과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박통의 맹신도(盲信徒)한테 속아서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해서다.

박통은 역사의 반역자

박정희소장 등은 장면민주정권이 출발한지 9개월만인 1961년5월16일 무능부패해서 총칼들고 나섰다고 했다.

장면정권은 1960년8월23일 출범했는데 18일만인 9월10일 육사8기 중심으로 쿠데타모의가 시작되었으니 18일만에 어떻게 무능 부패할 수 있는가. 또한 9개월만에도 무능 부패할 수 있는가. 그런 궤변은 권력에 미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을 뿐이다.

다만 국민들은 이승만독재12년간 경찰과 헌병 특무대(훗날 보안사) 등의 권력기관에 눌려 살다가 1960년 4·19학생혁명으로 탄생한 장면정권이 자유민주주의 꽃을 활짝 피워놓자 너도나도 중구난방으로 이제 겨우 출발한 정부에 한꺼번에 여러 가지 요구하며 시위가 심하여 사회질서가 난잡해졌다.

5·16주체들은 권력을 빼앗으려고 호시탐탐하다가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총칼로 강탈하여 역사의 반역자가 되었다. 자유와 인권 정의와 평등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역사의 방향을 역류(逆流)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통의 후예인 전두환과 노태우소장 등이 1979년 12·12군사반란을 일으키고, 1980년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시위를 폭도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총질해서 학살하며, 아무 관련없는 김대중선생을 폭동의 배후조종자로 몰아간 것도 박통이 역사 반역자의 길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군사독재32년의 원죄는 박통에게 있다.

 박통의 여러 가지 모습

그밖에도 박통이 반역자라는 원죄(原罪)이외도 여러 가지 모습이 발견된다.

첫째 박통군사정권은 1962년 워커힐사건과 증권파동 새나라차(일본제) 빠징꼬(회전당구대:일본제) 등 4대의혹사건을 저질러 정치자금을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1964년 시멘트와 밀가루 설탕을 싼 값에 수입해서 몇배나 비싸게 팔아 삼분(三粉)폭리사건을 저질러 정치자금을 만들었다.

그 바람에 1963년 쌀 한가마 2,500원하던 것이 이듬해 봄 4,500원으로 급등하여 민생고만 힘들게 만들었다.

둘째 박통은 목적을 위해서 변절을 밥 먹듯이 했다.
초등학교선생을 하다가 일본천황을 찬양하며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졸업하여 일본군장교가 되더니 1945년8·15해방 후 광복군에 입대했다가 귀국한 후 육사 2기로 졸업했다.

1948년 10월 전남 여수와 순천에 주둔한 국방군연대에서 남로당(남조선로동당) 공산군 반란시 박정희소령은 가장 높은 계급이었다.

박소령은 체포되어 사형구형시 군부내 남로당원들의 이름을 털어놓고 군부내 남로당조직표까지 그려서 제출한 공로와 만주군선배들의 구명운동으로 감형되더니 얼마 후 석방되어 복직했다.

셋째 박통만 경제개발하여 보리고개를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면정권 9개월동안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립하며, 한·일회담시 식민지 배상금을 한국측이 18억달러, 일본측이 12억달러를 서로 주장하고 있을 때 5·16쿠데타가 발생했다. 2-3일만 있으면 경제개발5개년 게획을 발표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박통군사정권은 장면정권이 만들어 놓은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노래하고, 한·일회담에서 경제개발협력기금으로 겨우 무상3억달러를 받았으니 이렇게 외국이 민주정권을 우대한 반면 군사정권을 무시한 증거가 되었다.

또한 박통은 미국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베트남전쟁에 국군을 파병한 후 월남특수로 10억달러를 벌어 보리고개 넘었다고 노래해서 국민들을 세뇌시켰다.

장면정권이 계속되었으면 일본과 중간타협만해도 식민지배상금으로 15억달러를 받아 자유와 인권을 누리며 국군을 베트남에 보내지 않고도 보리고개를 더 잘 넘을 수 있었다.

1960년대초 국고에 1억달러도 없었고, 우리나라 수출실적이 1964년 1억달러 정도로 국내와 국제경제규모가 작아 그 당시 15억달러는 큰 자금이라서 경제개발을 무난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넷째 남의 전쟁인 베트남전쟁에 자청해서 국군전사자 5천명이상과 상이군인 1만6천명이상이나 발생했으니 누구를 위한 희생이었나

다섯째 공화당재정위원장이 정부건설공사마다 10% 수금하여 박통에게 상납하면 공화당정치자금과 야당정치인 및 여기저기 뿌려 꿀먹은 벙어리와 사꾸라와 왕사꾸라를 만들었다.

여섯째 중앙정보부과장이 채홍사(彩紅使)가 되어 젊은 여인들을 줄줄이 대령하여 주색향락을 즐겼으니 문명사회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일곱 번째 1963년 대통령선거때부터 박통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지역감정과 지역갈등 지역주의가 만들어져 오늘까지 망국병으로 남겨놓은 실화를 몇 개만 소개한다.

1963년 이효상국회의장은 대통령선거 때 대구 수성천변에서 "이 고장은 신라천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이 긍지를 잇는 이 고장의 임금이 여태껏 한 사람도 없었다. 박정희후보는 신라 임금의 자랑스런 후손이다.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을 천년만에 임금으로 모시자"고 지역감정과 지역갈등 지역주의에 앞장섰다.

그는 대통령선거 때마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들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고 하는 등 망언을 많이 했다.

그밖에도 공화당정치인들은 "박대통령은 경상도대통령아이가, 문둥이가 문둥이 안찍으면 어쩔고, 경상도사람 제쳐놓고 박후보 안 찍는 사라은 미친사람이다. 1천만명에 가까운 경상도가 주동이 되고 단결만 하면 선거에 조금도 질 염려가 없다…영남표 일색으로 통일하자…"

특히 1971년 대통령선거시 영남지역에서 공화당과 중앙정보부의 요원들이 "김대중후보가 정권을 잡으면 경상도지역에서 피의 보복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똘똘 뭉쳐주지 않으면 우리는 망한다…우리가 몰표를 던짐으로써…"라고 부추켰다.

심지어 영남지역 야당인사들에게 "이 선거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싸움인데 왜 전라도놈의 앞잡이 노릇하느냐? 그렇게 하고 싶으면 이 마을에서 없어져라"고 하면서 여러명이 떼로 몰려와 구타와 협박도 했다.

여덟 번째 1969년 대통령3선 개헌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1972년 10월17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총칼로 위협하며 공포분위기 속에서 유신헌법을 만들어 체육관선거라는 영구독재체제를 만들어 악행을 많이 저질렀다.

대표적으로 몇 개만 얘기해 보자. 1973년8월 김대중선생을 중앙정보부요원들이 일본에서 납치하여 죽이려고 했으며, 1975년4월 중앙정보부 각본에 의해 고문으로 조작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관련자 8명은 군사법원에서 사형선고 받고 군사독재의 꼭두각시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4월8일 상고 기각하여 그 다음날 4월9일 사형확정한지 24시간도 안되어 신속히 사형 집행했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가

또 그 8명의 가족들은 수십년동안 빨갱이로 누명을 쓰고 살았으며 어린자식은 동네아이들이 빨갱이자식이라며 목에 줄을 매어 끌고 다녔다고 하니 그 원한이 얼마나 골수에 박혔을까 등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것들이 바로 오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르면 속는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박통은 ①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변절의 명수이고②자유민주주의 정권을 총칼로 빼앗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짓밟은 역사의 반역자이고③부정부패의 왕초가 되어 부패한 세상을 만들었으며 ④지역감정과 지역갈등 지역주의를 만들어 국민들이 망국병에 걸리게 했다. 그러므로 이런 인물은 우리 역사에 또 다시 생기면 안된다.

그런데도 수구세력들이 보리고개를 없앴다는 구호와 궤변으로 부풀려서 국민들이 세뇌되어 박통의 참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간략하게 말해보면 우리 현대역사를 자세하게 아는 사람들이 적어서 속아 온 것이다. 무식하면 속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런 것을 볼때 우리나라의 역사 중에도 적어도 근대와 현대(100년)역사를 자세하게 알아야 세상을 똑바로 보고 똑바로 살 수 있다.

그래서 역사의식이 있어야 우리 민족과 국가의 과거를 알고 앞으로 우리 민족과 국가의 발전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역사의식이란 민족과 국가의 발전하는 방향 (즉 역사의 방향)을 깨닫고 있는 상태이므로 정의(역사정의와 사회정의)의 길잡이가 된다.

따라서 박통이 국민들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주고 원한을 쌓게 한 사실을 곱씹어 생각하면 개혁과 진보의 길로 가는 역사의 길에 박근혜 한나라대표가 상해(傷害)당한 사건이 걸림돌이 될 수 없다. 개혁 진보세력이 그 사건과 관계가 없는데도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은 1975년4월 박통시절 중앙정보부 각본에 의해 고문으로 조작된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사형 집행된 관련자 8명의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하고 무엇이라도 도와주었는지 묻고 싶다.

또한 누가 뭐라고 해도 지구가 계속 자전하면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듯이 개혁 진보세력도 계속해서 민족과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갈 길을 가야한다.

지구가 계속 돌지 않으면 세상이 망하듯이 개혁진보의 길로 가지 않으면 군사독재시대 수구세력을 중심으로 부정부패의 길로 가며 민족과 국가의 발전을 후퇴시키기 때문이다.

국민들이시여!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춤을 추는 세상을 구경만 할 것인가?

2006년5월24일
김 만 식(평화통일시민연대 회원
시집 『박통이 최고라네』 산문집 『대통령은 아무나 하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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