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썼다"하면 되지
"잘 썼다"하면 되지
  • 박시훈
  • 승인 2006.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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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대한민국]박시훈 남도대안교육사랑방 지기
최근 몇몇 아는 분들과 대안교육연구회를 꾸리기 위해 모임을 가졌는데 연구회의 공간 문제가 나왔다. 언제까지 적당한 곳을 찾아보자고 일단 마무리를 지었는데 뒷풀이 자리에서 한 쌤이 인연이 있어 종종 들른다는 서원 이야기가 나왔고, 우리가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에 다음날 해뜨는 데로 바로 가보기로 했다.

그 곳은 임곡을 조금 지난 광곡마을에 위치한 '월봉서원'이었다. 월봉서원은 퇴계 이황과 사단칠정에 대해 격론을 펼쳤던 '고봉 기대승'을 기리는 곳. 광주 가까이에 이렇게 단아하고 멋진 곳이 있는데 왜 몰랐을까 싶었다.

우리는 그 쌤의 안내로 마을 입구에 위치한 고봉학술원을 찾았다. 연락을 미리 한터여서(연락을 하지 않으면 못보고 되돌아가기 십상이다) 그 곳의 실무를 맡고 계신 강기욱 쌤을 만날 수 있었고, 연구회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귀후제'를 찾아갔다.

'귀후제'는 월봉서원에서 조금 떨어진(걸어서 5분?) 산중에 위치했는데 구한말 고봉의 뜻을 기려 후학을 양성하던 교육장이었다고 한다. 기욱쌤은 귀후제가 원래 교육을 하던 곳이니 우리 모임의 취지와 잘 맞는 곳이고, '이곳은 이제 당신들 것이다'고 하기 보다는 잘 쓰는 사람이 결국 주인아니겠냐며 용기 내어 잘 준비해보라고 하신다.

고봉학술원에서 정기적으로 책을 만들어 내는데 '전통과 현실'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귀후제를 우리 모임에서 이용할 수 있을지는 더 논의해 봐야 하지만, 백년이 넘은 공간을 흔쾌히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그 마음에서 전통이 지금(현실)도 그대로 살아 숨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벅찬 감정이 들었다. 얼마 전에 경주를 다녀본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천년 고도의 유물이라서 그랬을까? 천년전의 시간과 이후 또 천년이라는 시간을 손으로 느껴보고 싶었지만 유리벽과 경계물이 오직 보기만을 요구했다. 눈으로는 '와~'라는 거세된 탄성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과거의 유산을 그대로 잘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도 다가설 수 있고 그 쓰임을 여전히 살리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이번 기회에 해본다. 물론 모든 유산과 유물에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너무나 테두리를 둘러 접근 금지하는 것들이 많다. 써서 닳아 없어지는 것에 우린 너무 민감한 것 같다. 후대에 그대로 물려준다는 것이 마치 닳아 없어짐의 책임을 우리 대에는 지지 않겠다는 회피는 아닐까? '우리 대에 없어져서 후대가 경험할 수 없다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하는 마음에서일까? 우리도 '접근 금지'면 후대도 '접근 금지'일게다.

귀후제를 두고서 "사람이 살지 않으면 건물이 더 못써져"라는 기욱쌤의 말씀이 다시금 귀가에 맴돈다. 그리고 이 건물에 진정으로 숨을 불어넣는 일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건물은 낡아지고 아이들 두 세명을 받치고 있기에도 힘겨워 할 때도 맞이하겠지만, 여전히 그 때도 아이들이 찾고, 뛰놀고,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는 게 아닐까?
"잘 썼다" 한 마디면 족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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