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투스야, 너 마저
부르투스야, 너 마저
  • 김만식
  • 승인 2006.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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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사에게 무조건 맹종해야 하나

1997년12월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 내가 지하철을 타면 나를 유심히 쳐다보며 수군거리기도 하고 울창한 나무속을 걸어가면 노인들이 "저 사람 이회창이와 똑같아…." "저 사람 목소리도 이회창이하고 똑같잖아..."하며 시선을 나에게 집중했다.

그뿐만 아니라 1998년말경 정치학회 주최 학술회의시에 점심식사를 하려고 몰려나가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가까이 와서 정중하게 인사하기에 내가 머뭇거렸더니 "저는 누구입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저명인사를 몰라보면 인사한 사람의 체면이 손상될까봐 "요새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을 잘 읽고 있습니다.”"라며 악수하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밖에도 군사독재시대의 고위직인물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서 군사독재가 지속되는데 공헌한 인물들이 국민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어 '구관이라고 모두 명관인가'라는 칼럼을 써서 여러개 신문과 잡지에 투고했다.

그런데 어느 신문과 잡지는 될듯 말듯 여러 날 질질 끌다가 거부하고 어느 신문은 지면이 작아 실을 수 없다 하고, 어느 신문은 아무 말도 없이 거부하였다. 무시된 것이 너무 불쾌해서 "개과천선했다는 신문이 그따위냐고 윗사람에게 보고하시오."라고 불만을 쏟아버렸다.

그 가운데서도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어느 신문은 "그런 글을 실을 지면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바람에 나는 너무 놀랐다. 정론지가 어디에 있느냐 말이다.

그 신문은 김대중선생이 1992년12월 대통령선거에서 낙선하고 정계은퇴한 후 1995년 정계복귀를 선언하니까 수구세력들의 공격이 극심하므로 나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만화속의 주인공NO]라는 에세이집 속에 DJ를 옹호하는 글15편을 실었을 때는 자발적으로 그 신문1면에 박스기사로 내 책을 소개까지 했었는데, 10년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며 옛날 로마의 영웅 시저가 정적 여러명이 칼을 들고 대들 때 자기 아들같이 사랑했던 부르투수도 그 속에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부르투스야, 너 마저"라고 한마디 남기고 쓰러진 모습을 생각나게 했다.

그러나 2005년 1월20일 '구관이라고 모두 명관인가' 이 글을 오마이뉴스에 게재했더니 6백여명이나 읽었다.

'구관이라고 모두 명관인가'의 끝부분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지위가 높을수록 또 고위직에 오래 있을수록 군사독재의 하수인 노릇을 많이 했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독재자의 방침에 따라 정책을 만들어 지시하고 감독하며 군사독재를 지속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입신영달을 위하여 기회주의로 독재에 기생하던 사고와 행태로는 시대에 맞는 변화개혁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승만독재시대와 군사독재시대의 구관은 명관이 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독재에 편승하여 검찰권을 발동한 검사와 판결을 한 판사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어느 권력 밑에서 고위직에 있었는지 그 시대를 똑바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 훌륭한 인격자가 보인다.

/김만식 평화통일시민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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