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장 한 장 차이와 하늘과 땅 차이
백지장 한 장 차이와 하늘과 땅 차이
  • 채복희
  • 승인 2006.05.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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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눈]채복희 편집장
'백지장 한 장 차이' 이 말은 흔히 비교되는 양자 사이에 별 차이가 없을 때 잘 쓴다. 그 반대 표현 중에 '하늘과 땅 차이'가 있는데 어지간한 차이가 있지 않으면 쓰기가 쉽지 않을 말이다.

대체 얼마나 어슷비슷하면 백지장 한 장 차이라 하고 또 그와는 달리 어느 정도 달라야만 하늘과 땅 정도로 차이를 주는 것일까. 외모 지상주의 영향을 받아 인물로 예를 들자면, 미남 장동건과 못생긴 정종철의 차이가 하늘과 땅차인가.

그런 차이를 계량화해 수치로 환산하면 1과 1억 정도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어떤 다른 척도를 제시해 비교를 해야 하는지 대략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장동건의 눈이나 코를 정종철에게 옮긴다면 정종철도 미남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정종철의 눈과 코 혹시 입을 장동건의 얼굴에 붙이면 장동건이라도 추남이 될까.

미남 장동건과 추남 정종철

장난을 좋아하는 한 네티즌이 우리나라 여성 탤런트 중 제일 예쁜 세 사람을 골라 그들 얼굴 중에서도 가장 완벽에 가까운 각각의 눈과 코, 귀를 골라내 새로운 한 사람 얼굴로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었다. 결과는 가장 예뻐야 할 얼굴이지만 그만 묘하고 이상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차이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동일한 한 사람인데도 그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이야기는 문학 작품의 소재로 쓰였고, 심리학자들은 다중인격을 설명하기도 한다. 아주 작은 차이에서 시작되지만 나중에 그것이 매우 큰 차이를 불러 온다는 '나비효과'란 이론은 나비의 날개짓이 태평양을 건너가면 태풍이 된다는 비유로 설명해 준다. 이는 정신세계를 설명하는데 적합해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촛불시위로 비롯된 새로운 시위문화도 처음 아주 작은 규모로부터 출발했다. 지금은 이런 사례들이 적진 않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전국 순례에 나서거나 팔 다리가 없어도 야구를 한다든지 하는 경우는 신체적 차이로 말미암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을 다 할 수 있다는 의식으로 바꿔주는 좋은 나비효과 사례다.

바늘도둑과 소도둑
'시민의 소리'가 처음으로 기사화한 광주 동구청장 업무추진비 까드깡 의혹은 처음 광주사회에 알려지자 투명하지 않은 행정을 비난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드높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의의 제기도 있었다. 액수와 관행에 대한 언급이었다. 아무리 많아봤자 몇천만원 밖에 안되고, 관행으로 계속돼온 일이라 다른 비위사실들에 비하면 별거 아닌데라는 시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 사안의 본질은 결코 액수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으며, 관행이라며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된다는데 있다. 액수가 많고 적음은 큰 차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의 세금을 쓰는 공금이라면 백지 한 장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백지장 한 장 차이이다. 그것은 몇천만원이든 몇백억이든 똑같은 비중으로 취급되어야할 '공금 횡령'에 다름 아니다.

관행으로 저질러지는 공금의 부적절한 사용이 처음 시작될 때는 아마 사소한 작은 액수로부터 저질러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 액수가 점점 커지게 되기도 하고, 또 여기저기 자기보다 크게 집어 삼키는 못된 행태들이 목격되면 하늘, 땅의 차이 운운하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해갔을 것이다.

불법 정치자금이 천억원대 이상 조성되고 거래되는 세상이다. 그러니까 동구청 업무추진비는 눈에 보이지도 않게 된다. 그러나 처음 백지장 차이로 시작했을지라도 하늘과 땅 차이로 진행할 수 있다. 더러운 물한방울도 모아지면 우리의 의식을 오염시키는 발원천이 되는 것처럼.

참 이럴 때 쓰는 적합한 표현이 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는 말인데, 결국 바늘도둑과 소도둑은 백지장 한 장 차이도 되고 하늘과 땅 차이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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