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서생] 뭇남자들의 뒤틀린 음란코드
[음란서생] 뭇남자들의 뒤틀린 음란코드
  • 김영주
  • 승인 2006.03.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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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보는세상]
흔히들 젊은 날엔 산뜻하고 화사한 걸 좋아하다가 나이 들면서 단아하고 담백한 걸 좋아하게 된다는데, 왠지 난 거꾸로 10여년전까진 담백한 걸 좋아하다가 나이 들면서 화사한 걸 좋아하게 되어 간다. 색채의 마법사 장예모의 작품은 작품 자체도 좋지만 그 색감으로 이끄는 환상적 이미지, 미야자끼 하야오의 만화영화들 ·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제국] ·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가 보여주는 깊고 화려하고 기묘한 색채감, 그리고 우리 영화에서 정일성 촬영감독의 장면들과 [스캔들]에서 만난 지극하게 품격 높은 색채감과 조형감. 최근에 TV드라마[쾌걸 춘향]에서 박진감 넘치는 화면구성과 함께 그 산뜻하고 화사한 색감들의 의상이나 소품과 장식품이 쿠~울하게 경쾌하고 발랄했다. 의식하지 못하다가 스스로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오랫동안, 한 점을 콕 찍은 듯한 앙증맞은 산뜻함을 아롱다롱 즐기고, 다채로운 색채감과 우아한 조형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 음란서생 그걸 [스캔들]에서 깊이 맛보았다. 디비디로 보고 또 보았다. 그 색채감과 조형미 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 두지 않았다. 그에 엇비슷해 보이는 영화포스터가 걸렸다. [음란서생] 그 탐닉의 욕망이 꿀꺽 복받쳐 올라왔다. 예고편에 그 미감이 약간 싼티났지만, 싼티내는 관객들을 의식하고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내 욕망을 달랬다. 그랬다. 그 색채감과 조형미가 [스캔들]보다 상당히 못했고 [왕의 남자]보다는 좀더 좋았다. 시나리오는 고만고만하니 별로 관심 없다. [스캔들]과 [왕의 남자]처럼 껍데기는 조선시대이지만 알맹이는 조선시대가 아니다. 김민정의 얼굴 분위기가 왕의 여자로 나오기엔 어울리지 않았지만, 재미삼아 만든 음란코메디를 그리 따지고 들 건 없다. 추하지 않게 섹시하면 된다. 그래도 그녀의 왕방울 눈이 많이 부담스럽다. 그런 눈은 살짝 내리깔듯이 눈을 들어 올려야 예쁜데, 무조건 눈이 커야 좋은 줄 알고 눈썹까지 올려들면서 동그랗게 떠올리는 왕방울 눈은 오히려 질린다. 한석규 연기는 튀지 않고 편안하게 그 역할에 잘 어울려서 좋았고, 조연 배우들도 거슬리지 않았다. 거슬리지 않으면 잘 한 것이다. 사람들은 오달수의 조연을 자주 칭찬한다. 내 눈엔 그저 고만고만하다. 오히려 내시로 나오는 김뇌하의 연기가 깊이 새겨 들어왔다. 처음으로 눈 안에 들었으니 좀더 지켜보아야겠다. ▲ 음란서생
코믹한 재미는 세 영화가 비슷비슷하지만, 이 영화는 젊은 관객들의 산뜻하고 쿠~울한 섹시코드하고는 달리 좀 꿀꿀한 어른들의 느끼한 음란코드에 더 가깝게 성희롱하는 듯한 농담으로 질펀하다. 그런 과격하고 진한 농담을 코믹하다고 낄낄대기엔 자기가 추한 저질로 보일지 모른다는 부담이 작용하겠다. 그러면서도 남녀의 사랑을 좀더 깊이 탐색하려는 진지함이 제법 무겁고 긴장된다. 감각적 환타지에 젖은 젊은 관객들이 보기엔, 이 두 가지의 느물거리는 뒷맛에 이 영화의 코믹한 재미가 엇박자로 물려들어 죽도 밥도 아니어서 지루하고 늘어져 답답해 할 것 같다. 음담패설이라는 게 조금 숨긴 듯이 살짝 가리면서 감질난 맛을 내야 하는데, 노골적으로 거칠게 “다 알면서 우리 비비꼬지 말자”며 확 까발리고 치고 들어오면 오히려 지겹다. 기본 내공과 안목이 딸리고 연출기술이 설익어서 감독이 진짜로 말하고 싶은 걸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여기저기에서 서툴고 빵구난 곳이 많지만, 감독이 그 와중에도 주제를 꼬옥 보듬고 진지한 심리적 탐색을 벌이고 있다. 나에겐 그 점이 [스캔들]이나 [왕의 남자]보다 좋게 보였다.

그런데 그 사랑의 심리적 탐색에 ‘남성중심적 사랑과 음란’이 깔려있다. 몸으로 보여주는 야한 장면은 그리 야하지 않았지만, 음담패설은 포르노였다. 스팸메일을 통해 들어오는 쓰레기포르노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멸시와 폭력으로 짓밟는 악귀들의 배설구이다. ‘가난하고 불쌍한 여자들’을 모질게 희생양으로 삼아서, 펄펄 끓어오르는 젊은이의 폭발하는 성적 충동과 일부일처제에 짓눌린 뭇남성들의 ‘떠돌이 성욕’을 이용한 돈벌이 수단이요, 정신병적인 학대를 의도적으로 조작하여 만들어낸 ‘색마色魔의 분탕질’이다. 짐승들은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은 맞지 않다. 돈에 환장한 악마들의 폭행이다. 잿빛 도시문명의 뒷골목 짙은 그늘에 짓눌려 살다보니 그리 된 것이지, 그렇게 막되 먹은 분탕질을 즐기는 여자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 남자들 대부분은 그런 포르노로 성교육을 받으며 음탕하게 낄낄거린다. 거기엔 극렬하게 거룩하신 고결주의자들이 강요하는 지나친 엄숙과 근엄에 짓눌린 위선적 가면 뒤에 음습한 폭력성이 깊이 숨죽여 숨어있다. 이야기하자면 책 열권으로도 다 할 수 없다.

   
▲ 음란서생
마흔을 넘긴 남자들은 이렇게 뒤틀린 성적 욕망의 숨겨진 코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감독은 말한다. “그대와 만남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육체적 욕망인지 진짜 사랑인지 알지 못하겠는데, 어찌 그리 쉽사리 사랑이라며 날 속이고 그댈 속이겠는가?” 음미할 만하다. 비록 포르노의 음란코드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나름대론 솔직하다. 여잔 “남자란 게 그렇다”는 걸 알아야 한다. 몰랐다고? 모를 수 있다. 이 사회가 체제유지를 위한 문화이데올로기 안에 교묘하게 숨기면서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얼버무려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곤 겨우 “남자는 늑대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속설만 떠돈다. 그래서 남자들도 밑도 끝도 없이 말한다. “여자는 여시다”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말장난에만 머물러 있을 건가?

* 뱀발 : 암말과 숫말의 짝짓기 그림이 너무 조잡해서 잘 차려진 밥상에 콧물 빠진 듯이 기분 잡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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