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너나 잘 하세요
대~한민국? 너나 잘 하세요
  • 이정우 기자
  • 승인 2006.03.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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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눈]
문제 하나. 케이티에프(KTF), 에스케이티(SKT), 우리금융, 삼성파브 등(물론 더 보탤 수도 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2002년 월드컵의 응원 말인 '대~한민국'과 그 말의 주인이었던 '붉은 악마'를 활용해 자사의 제품 혹은 이미지를 홍보하고 있는 기업들, 이 답이다.

케이티에프 광고는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때의 시위 주동자의 몸짓과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고, 에스케이티는 윤도현을 시켜 애국가를 부르게 하고 있다. 우리금융과 삼성파브는 '대한민국이 최고의 브랜드'라는 식의 광고 말 배경에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을 오버랩시키는 기법을 보여준다.

시키지 말라, 안 그래도 외친다

애국주의를 상품 판매의 도구로 삼자는 전략으로 보이는데,이건좀불편하다.'대~한민국(응원말)=대한민국(국가이름)=애국주의=그 애국에 앞장서는 기업'으로 몰고 가는 이들 광고의 전략이 매우 유치해 보이는 것이다. 까닭은, 애국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그들이 제시하는 게 고작 빨간 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이라고 소리 지르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국가간 경쟁의 성격이 뚜렷한 대진게임에서 그 국가의 이름을 응원말로 쓰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그 때의 국가 이름은 응원을 위해 모인 이들의 최대공약수라는 점이 분명하다. 그러나 국가 이름을 연호하는 개인의 이유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누구는 애국주의, 누구는 남들이 하니까, 누구는 그냥, 누구는 축구가 좋아서… 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광고는, 외침의 이처럼 다양한 동력을 '애국주의' 한 방향으로 모으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는 것이 애국이니까 이번 독일월드컵에서도 '대~한민국'하자, 는 노골적인 강요다. 공중파 광고를 통해서 그러고 있으니 노골적이고, 안 시켜도 할 수 있는데 굳이 시키고 있으니 강요다.

짐작컨대 '대~한민국'은 그들이 시키지 않아도, 한국 사람이라면 알아서 소리 지를 것이다. 시위를 주동하는 절박한 호소의 방법이 아니어도, 윤도현 같은 유명 가수가 선창을 하지 않아도, '대~한민국'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니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다. 기업, 너나 잘 하세요, 라고. 오히려 기업이 '오버'하면 '대~한민국'이 싫어질 수도 있으니 이 즈음에서 선동을 그만두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애국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동반한다

그들이 '대~한민국'을 강요하는 보다 깊은 속내는, 우리는 이처럼 애국주의적인 기업이다, 는 자기 홍보에 다름 아닐 터. 그러나 묻고 싶은 바는 무엇이 대한민국이냐는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를 내 보자. 이하 열거하는 단어들 중 대한민국인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해 보시오. 국회, 헌법재판소, 휴전선, 삼성, 현대, 엘지, 비정규직 노동자, 스크린쿼터, 농민, 황우석, 김대중, 박정희, 월드컵 대표팀, 조선일보, 시민의소리….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국가는, 스스로를 '공공선' 추구체로 규정하고 이에 국민들은 따라야 한다고 강제한다. 특정인, 특정계급, 특정집단의 시스템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공공선'이니 그래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국가가 그랬던 경우를 우리는 본 적이 없다. 국가는 늘 특정인, 특정계급, 특정집단, 심지어는 특정지역에까지 편향적이었다.

스포츠가 국가주의, 혹은 애국주의와 쉽게 결합하는 까닭은 그것이 어느 것보다 '공공선'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이기면 이건희도 좋고 노회찬도 기쁘며, 노무현도 웃고, 박근혜도 '민생' 걱정을 덜하게 될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스포츠는 기분만 좋은 유사 공공선이다. 기업이 이를 아낌없이 활용하는 이유가 이 '유사성'에 있다. 그것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유사'가 아닌, '진짜' 애국의 물결을 기업이 차용하기는 힘들다. 진짜 애국에는, 그 애국이 가져다줄 변화를 놓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애국은 '대~한민국'처럼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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