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 지켜야 하는 이유
스크린쿼터 지켜야 하는 이유
  • 이정우 기자
  • 승인 2006.02.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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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 눈]이정우 편집장
한국영화 의무 상영일수가 오는 7월부터 현재의 절반 수준인 73일로 축소된다. 영화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쿼터가 축소되더라도 손해가 없는, 오히려 더 많은 이익을 꾀할 수 있는 영화배급사는 침묵하고 있고, 정부는 "스크린쿼터는 자유무역협정에 걸림돌이 된다. 대외의존도가 70%를 넘는 우리나라로서는 범세계적인 무역자유화 대열에 동참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형편이다. 무역자유화의 물결은 수시로 스크린쿼터 제도의 변화를 요구해 왔다."며 축소의 불가피함을 강조했다. 국민들의 여론은 찬성과 반대가 반반 정도로 조사되고 있다.

오늘은 73일로 줄었지만 내일은 제도 자체가 아예 폐기될지도 모른다. 아니 '모른다'가 아니라 그렇게 될 것이다. 많은 일들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영화, 극장에 걸려야 '경쟁'가능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크린쿼터 제도는 사수되어야 한다. 이제 한국영화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쿼터 축소(혹은 폐기)론자들의 논리다. 영화계의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경쟁은 '참여'했을 때 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봄나물을 소쿠리 가득 담아 왔다 할지라도 좌판을 차지하지 못하는 할머니는 나물을 팔 수 없다. 〈올드보이〉든 〈왕의남자〉든 극장에 걸리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볼 수 없으면 애시 당초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

극장에 영화를 거는 일은 배급사가 결정한다. 배급사는 한국영화만 배급하는 게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도 받는다.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와 한국의 그 파트너들은, 예컨대 "이 영화를 걸지 않으면 다음 작품인 '반지의 제왕'을 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늘 '조건'을 단다. 조건 중에는 "저 영화를 내리지 않으면 다음 작품인 '반지의 제왕2'를 주지 않겠다"와 같은 경쟁작 공격하기도 있다.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투사부일체〉를 띄울 요량으로 극장으로 하여금 〈홀리데이〉(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를 내리게 한 사건이 엊그제 벌어졌다는 점을 상기하자.

메이저 배급사들은 또한 입소문이 돌지 않은 개봉 첫 주에 좀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극장 스크린을 자기 영화로 도배한다. 기획형 블록버스터 〈태풍〉(CJ엔터테인먼트 배급)의 개봉 첫 주 스크린 수는 540개였다. 지난해 12월29일 개봉 당시 〈왕의남자〉(시네마서비스 배급) 스크린 수는 255개였다. 만약 한국영화의무상영일수가 현행 146일이 아니라 73일이었다면 〈왕의남자〉는 상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쿼터 줄어들면 중급 영화 타격

영화만 좋으면 배급사들 또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극장에 걸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올드보이〉나 〈왕의남자〉가 처음부터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고 어느 배급사가 안다는 말인가. 이 두 영화는 원채 잘 만들어진 영화이니까 배급사들이 욕심을 내 걸었다고 치자. 배급사 사장인 당신이 시사회를 통해 〈집으로…〉나 〈말아톤〉을 봤다면 과연 '대박'을 예측했겠는가.

스크린쿼터 제도는 거대자본의 횡포를 막는 최후의 안전판이다. 그것은 공정경쟁을 침해하는 제도가 아니다. 할리우드가 갖고 있는 자본의 힘으로 인하여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는 국내 영화를 위해 공정경쟁의 전제조건이 되는 '조건의 동일성' 확보해주는 장치이다.

스크린쿼터 제도가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영화 부흥은 그 기회조차 갖지 못했을 수 있다. 60-70년대 한국영화도 지금 못지않게 황금기를 구가했었다. 80년대 들어 한국영화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만약 스크린쿼터 제도가 없었다면 그때 한국영화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한국영화가 다시 내리막길을 걷지 말라는 법도 없다.

스크린쿼터 축소가 가져올 예측되는 결과는 '애매한 영화'의 위기이다. 당초에 대박을 목표로 한 기획형 블록버스터, 혹은 잘 만들어졌다고 소문이 파다한 작품 등은 큰 탈 없이 극장에 걸릴 것이다. 하지만 〈집으로…〉나 〈말아톤〉처럼 흥행가능성이 모호하고 다소 실험적인 작품들은 상영관을 찾지 못할 수 있다. 마침내는 이 같은 영화들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조차 없어질 수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 〈와이키키브라더스〉 같은 영화들은 상영관을 얻지 못해 영화제를 통해 그 작품성을 평가받았다. 스크린쿼터 축소는 이처럼 애매한(그러나 잘 만들어진)영화들이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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