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집의 승부
반집의 승부
  • 정지아
  • 승인 2006.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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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평] 정지아 소설가
제왕 이창호는 초등학교 시절 7년이나 조훈현의 집에서 기숙을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조훈현의 부인은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이층으로 올라가는 이창호의 발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들려온 것은 바둑돌 놓는 소리였을 뿐이다. 범상하나 범상치 않은 이 한 구절에 나는 무릎을 쳤다. 그제야 십 수 년 전 한 선배가 내게 한 쓴소리를 이해했던 것이다.

그 무렵 대학을 갓 졸업했던 나는 진보적인 어느 출판사 방 한 칸에 깃들어 부모님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진보적인 글을 실었다가 여러 차례 폐간의 위기에 처했던 그 출판사에는 어두웠던 한 시기를 피 흘리며 용맹정진해온 투사들도 여럿 있었다. 그 중 한 선배가 어느 날 커피를 마시러 나온 내게 부신 봄 햇살에 눈 찌푸리고 하품하듯이 느릿느릿 나직나직 말을 걸어왔다.

“여기가 어딘 중 아는가?”

여기가 한국이고 서울이고 출판사이며 편집실 한 귀퉁이지 어디겠는가. 엉뚱하기로 소문난 선배가 또 흰소리를 하는 게지 싶어 나는 대답 없이 그저 빙긋 웃어넘겼다. 선배는 더 따져 묻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말이 십 수 년의 세월 동안 잊히지 않았던 것은 느리고 나직한 말투와 달리 말갛게 쏘아보던 선배의 눈빛 때문이었다.

스승의 집에 기숙하던 십여 세의 소년 이창호. 삐걱거리는 낡은 목조계단을 오르던 그 소년의 심정을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혹 다른 사람들의 잠을 깨울까, 아니면 스승의 생각을 방해할까, 소년은 걸음걸음 온 신경을 모두어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계단을 올랐을 것이다. 그 조심스럽던 소년은 반집의 승부를 즐긴다고 한다. 다섯 점을 이길 수 있는 자리가 있어도 반집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조심스러움이 잉태한 그릇의 크기 앞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가 세계 바둑을 제패한 후 제 아무리 상금 적고 귀찮은 기전이라도 거절하지 않는 것 역시 그 때문이리라.

어린 시절 나는 바람처럼 살고 싶었다. 그것도 거침없이 사막을 휩쓰는 바람처럼. 그 시절에는 콩나물 십 원 어치를 마음대로 사지 못하는 어머니의 삶이 구차했고, 행여 딸자식 잠을 깨울까봐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마루를 밟던 어머니의 마음씀이 짜증스러웠다. 사십여 년 바람처럼 거침없이 살아보니 이제 알겠다. 거침없다는 것은 잘 벼린 칼날처럼 누군가의 아픔이나 슬픔을 먹고 자라는 법이다. 사막을 달리는 바람조차 거침없이 허공을 달리는 게 아니다. 사막의 바람은 그 바람으로 인해 하늘로 솟구친 모래를 품고 서걱이는 마음으로 달리는 것이며, 제 품에 박힌 그 모래를 언젠가는 어느 곳엔가 내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낯선 곳으로 옮겨진 황사는 곡식을 살찌우는 토양이 된다.

사람의 살이 또한 그러하다. 스승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발걸음, 자식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남에게 내밀어야 했던 부끄러운 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배알이 뒤틀려도 견디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사의 폭언, 사람이란 이 모든 것들을, 그 슬픔이나 아픔, 고통까지를 진주처럼 마음에 담고 한 생을 견뎌내야만 한다. 마음에 품은 것들이 썩고 문드러져 거름처럼 발효할 때 마음 또한 조금씩 넓어지는 것이며, 돈이나 명예, 출세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확장된 마음, 그것만이 사람이 살아야 할 이유가 아니겠는가.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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