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임시번호와 속도
자동차 임시번호와 속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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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 눈]이정우 편집장
설이나 추석명절 때 전국의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에게서 두 가지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유독 '임시번호'를 단 차들이 많다는 점이다. 직사각형 나무판에 대각선으로 두개의 붉은 줄이 그어진 자동차 임시번호판을 말하는 것이다. 반듯한 자동차를 타고 고향땅에 들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구입절차를 마무리 지은 흔적인 것만 같아 특히 명절 때 보이는 임시번호는 각별한 느낌을 주곤 한다.

둘째는, 길이 뻥 뚫려있을 경우 임시번호던 아니던 고향을 찾는 그들 자동차들의 속도가 장난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도야 두말할 것도 없고, 농로를 지나가는 데도 흡사 추격전을 벌이는 듯 해 깜짝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동안 막힌 길에 대한 원풀이일까 싶기도 한데, 20년이 넘게 명절 때마다 서울과 전남의 시골 고향을 왕래한 한 친구는 이렇게 고백했다. “도시에서 눌려있던 마음이 풀리더라고. 내 세상인 것만 같고, 또 고향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될 것 같으니 한번 달려보자는 거지.”
그 또한 임시번호판을 달고 고향땅에 접어든 적이 있었다. 이 경우에는 더 큰 해방감에 가속페달을 훨씬 깊숙이 밟게 되더라는 말을 친구는 덧붙였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훈계조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물리적인 것이든 심리적인 무엇이던 간에 우리들의 고향은 도시의 배설처가 아니지 않겠는가. 경운기를 비롯한 저속의 농기계에 익숙한 농부들에게 매끈한 세단형 자동차의 '속도'는 위화감을 주기까지 한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고향에서는 고향의 속도를 준수했으면 한다. 가는 길에 아는 어르신이라도 만나면 차를 멈추고 내려서서 인사한다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설익은 훈계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대가 고향을 그저 '임시'로 다녀갈 뿐이라고 항변한다면 훈계 따위는 접겠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당신에게 고향은 자동차의 '임시번호판'처럼 명절 며칠 동안만의 '임시거처'일 뿐인가? 국회의원들이 쌀비준안을 통과시키듯 도시의 필요에 따라 내지르면 그만인 곳이 그대와 우리들의 고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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