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담론과 진실의 실종
거대 담론과 진실의 실종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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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평]시인·문학평론가 박몽구
한 교양지 기자로 몸담고 있을 때 이야기다. 이 잡지에는 매월 ‘뜻있게 사는 사람’ 등 화제의 인물 탐방 기사가 실리고 있었는데, 필자는 적잖은 이들로부터 어떻게 그런 취재원을 찾아냈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그때마다 무슨 기밀사항이라도 되는 듯 빙그레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실은 취재원 발굴의 비밀은 간단한 데 있었다. 즉, 일반 신문이 아닌 통신사가 일선 신문사에 배포하는 뉴스 등을 뒤적거려서, 숨은 미담 기사 따위를 찾아내는 것이 주된 취재원 확보책이었다. 최근처럼 대형 뉴스가 연일 계속 터지는 때면, 교양지에 어울리는 취재거리는 더욱 풍부했다.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은 현대 미디어의 속성 때문이다. 현대는 '의제(議題) 설정의 시대'라고 한다. 대부분의 언론기관들이 웬만한 기사거리를 발견하면, 그것을 온 사회를 들끓게 하는 관심사로 만들어가는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최근 '황우석 사태'나 '사학 파동' 같은 뉴스거리가 떠오르면, 연일 신문지면이 이 뉴스로 장식되면서 온 나라가 며칠이고 떠들썩해진다. 이 과정에서 통신사 제공 뉴스들 가운데 실로 주옥같은 미담, 문화 관련 기사, 지방 소식들은 그대로 사장되고 만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메가톤급 뉴스 탓에 버려지는 이들 낙종 기사들 가운데 의외로 알토란같이 생명력이 넘치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비단 언론 현실뿐 아니라 거대 담론이 팽배한 사회에는 이처럼 가치있는 것들이 숨도 못 쉰 채 희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셀 푸코에 따르면 보수 언론, 오염된 정권 등은 금지, 분할과 배척, 진위의 대립 따위의 끝없는 조장을 통해 거대 담론에서 벗어난 사상(事象)을 소외시킨다. 끝내는 주체를 혼란시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만들어 간다. 비대한 몸집이 거대 보수 언론 중심으로 벌어지는 황우석 공방, 심지어 검판사 역할까지 해가며, 사학법 개정의 추이를 왜곡시키는 것 등은 그 일례이다.

따라서 거대 담론이 힘을 지니려면 먼저 그것을 리드해 가는 주체들이 건강하고 진실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점에서 그야말로 민주화의 큰 산물은 참여정부의 성격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참여정부의 거대 담론은 두말할 여지없이 민주화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꾸려가는 과정의 불합리성과 오염된 주체이다. 과정의 불합리성이란 것은 이 정권은 민주화를 위한 징검다리 정권이지 결코 완성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미비한 데서 온다. 거듭된 부동산 규제에도 불구하고 이제 월급만으로는 내 집 마련의 꿈이 좌절된 것하며, 유례없는 수출의 호조와는 반대로 젊은 실업자가 급증하는 것은 이를 말해준다. 참여정부는 성급하게 민주화를 외치기보다 철저한 과거 청산을 통해 고질적인 기득권층의 발호를 먼저 막았어야 한다고 본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한다고 발표하는 이면에, 관련 고위 인사들이 땅부자로 드러나고, 인맥 인사를 청산한다는 슬로건 뒤에 '부산 마피아'들과 정당 주변 인사들만이 늘어선 모습은 민주화라는 거대 담론과 거리가 멀다.

한편으로 테크노크라트들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 못지않게, 검증되지 않은 386세대를 중심으로 한 권력 주변의 신기득권층에 지나치게 권력을 과점시킴으로써 거대한 지지층을 잃어버리는 화를 자초했다. 이 과정에서 제3공화국 이래 양심의 등불을 켜온 수많은 인사들이 등을 돌린 것도 큰 손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참여정부는 거대 담론에 매이지 말고, 민주화로 가는 징검다리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이다. 그럴 때 거대 담론에 가려진 민중들의 실상이 보이고, 그들이 소외시킨 민주화 세력의 거대한 뿌리가 보일 것이다.

/시인·문학평론가 박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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