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되지 못한 황교수의 날개
신화가 되지 못한 황교수의 날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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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대한민국] 미디어 활동가 김우경
황우석 교수에 대한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가 이루어졌다.
'혹시나'라는 국민의 기대와 '그래도' 라는 끝자락을 부여잡으려는 희망의 언어는 현재가 아닌 과거가 되었다. 이 때 수많은 입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는 한계가 생긴다. 그 표현되는 한계 속에서 현재의 허탈감은 '설마'를 넘어서 '그러고도'라는 감탄사로 끝나지 않았을까 싶다.

우공이산의 정신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황우석신드롬에 관심이 없었다. 비호감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호감과 호감을 떠나 그냥 사회적으로 한국사회를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여기서 두 가지 생각. 정부와 국민 그리고 언론을 싸그리 욕하면서 시원해지는 청량제 효과. 그래서 자신만 혼자 젠체할 수 있는, 시원한 박하향을 느끼며 혼자 콧노래를 부르며 '대한민국이 그럼 그렇지'라는 첫 번째 생각. 하지만 이것은 부메랑 효과로 결국 자신에게도 욕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너도 속으로는 좋아하지 않았냐고. 암묵적 지지이고 동시에 그 무임승차 하려는 프리 라이더의 심정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나 더 생각. 황우석 사건이 그저 그것이 그런 거지. 반성하고 계속 연구해 나가면 되는 것 아니야? 무색무취의 맹물로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깊게 새겨 보지 않는, 한편으로는 무관심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척 강한 척, 자신과 대상과의 몰입을 방해하며 동일시하지 않으려는 자기 소외효과에 친숙한 자칭 쿨한 생각. 여기에는 그 많은 에너지와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 실적을 내려는 지나친 성과주의에 경도된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시각이 담겨있다.

두 생각 모두에 조금씩 걸쳐 있는 것이 현재의 내 생각이다. 그러면서 우공이산을 떠올린다. 산을 옮기려는 어리석은 한 노인의 그 우직한 노력과 시류에 영합하지 않으며 그 과정에 충실하려 했던 그 정신을 다시 생각한다. 그 정신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언론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상찬의 언어, 그 많았던 화려한 수사는 어디로 가나. 혹시 황우석교수가 반전을 꾀하게 된다면? 상상만해도 끔찍한 블랙 코미디이다. 이제 정신을 차린 듯 언론은 황우석교수에 대한 매질을 시작하고 있다. 언론의 그 잘난 물타기로, 현실로 다시 복귀한 것이다. 하지만 언어의 표현과 이미지가 부여한 그 많은 허상과 신기루는 현실을 넘어 신화가 되었다.

황우석의 날개는 썩은 동아줄

신화는 현실에 직접적으로 발을 딛지 못한다. 그러나 현실과 완전히 떨어져 있지도 않다. 현실이 신화가 되기 위해서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것은 날개다.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밀랍으로 만들어져 자신의 조건이 아닌 태양이라는 외부의 힘에 쓰러져갔다면 현실은 그것을 신화로 기억하기에 충분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때 황우석신화로 불리었던 이 사건은 다르다. 자신이 만든 거대한 거짓말과 표정을 재료로 언론이 부풀린 썩은 동아줄과 연결된 자본으로 치장된 화려한 커넥션. 그것이 황우석의 날개였고 그것이 그 신화의 모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을 가로막고 있었다. 황우석사건은 신화가 아니었다.

/미디어 활동가 김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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