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남자]패러디는 부족하고, 시대풍자의 힘도 약해
[왕의남자]패러디는 부족하고, 시대풍자의 힘도 약해
  • 김영주
  • 승인 2006.01.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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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보는세상]왕의남자
공길의 양성적 매력이 불완정하게 연출된 점 아쉬워… 감우성의 연기는 좋았지만, 좀더 선이 굵은 배우가 맡았으면… 연산군의 히스테릭한 이중성을 좀더 섬세하고 미묘하게 그려냈어야 했는데…

이런 말을 하면 ‘내 잘난 체’로 오해받을 수 있어서 주저스럽지만, 우리나라 지성의 거의 대부분을 불신한다. 평론은 특히 그렇다. 영화평론은 더욱 그렇다. 신문의 영화기사는 건성건성 대충 훑어내려 읽는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말들은 전혀 관심 없다. 그러나 이정우기자의 영화글은 소홀히 하지 않는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하거나 생각지 못한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때론 정곡을 찌르는 통쾌한 글맛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와 견해가 다른 경우도 많다. 사람마다 얼굴 다르듯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사람마다 견해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 다른 견해가 싫은 때도 있지만 배우는 때도 있다. 이정우기자의 [영화읽기] 에서 이번 〈왕의 남자〉에 대한 견해는 나하고는 많이 다르다.

▲ 왕의 남자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세상에는 크고 작은 ‘시비 선악 우열’이 있다. 그러나 그걸 논의하는 당사자들이 ‘고만고만한 도토리 키재기’로 다툴 수는 없다. 수많은 사람과 긴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다. 단지 우리는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 배려하면서 자기의 견해를 드러내어 내놓을 따름이다. 설익은 자기집착으로 섣부른 감정의 찌꺼기에 휘말려서, 서로 배워야 할 점을 눈감아버리는 어리석음을 줄이고 줄여야 하겠다.

[외출]에서 손예진의 연기에 반하여 보게 된 [작업의 정석]은 점쟁이집 인테리어말고는 F학점인데도 200백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렇게 돈이 불쌍하고 시간이 불쌍한 영화를 200만명이나 보다니, 우리 젊은 관객들 정말 이러심 안 되는데…. [웰컴투 동막골]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에서 히트치는 영화는 내 눈엔 대체로 C+학점짜리이다. [왕의 남자]는 C+학점으로 보이니 ‘히트 포인트’를 잡은 셈이다. [황산벌]도 그런 영화이지만 워낙 황당하게 패러디하며 웃겨주어서 그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았다. [왕의 남자]는 조금 재미있긴 하지만 [황산벌]보단 못해 보였다. 역사물 패러디라고 하기엔 황당하지 않았고, 오늘날의 눈으로 본 시대풍자라고 하기엔 공력이 많이 딸린다.

공길(이준기)이라는 여장남자의 눈매에 흐르는 그윽한 눈맵시가, 고혹적인 눈웃음을 머금고서 뭇 사내들의 가슴을 후려치며 호린다. 그런데 그 매혹이 사무치게 깨끗하고 착해 보여서 가슴 저미도록 애잖다. 탈바가지를 벗으며 싱긋 미소 짓는 첫 장면에, 관객들은 뽕 맞은 듯이 넋을 잃는다. "헉!" 신음소리에 가까운 탄성이다. 좀 무리스런 말이지만, 이 영화는 이 그윽한 눈맵시에 머금은 싱긋 미소 하나로 히트쳤다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대역을 써서라도 그의 목소리와 자태를 더욱 가녀린 음색과 몸맵시로 가다듬어 양성적인 매혹을 잡아냈더라면 "Perfect!"였겠다. 그 완벽을 이루지 못한 '옥에 티'가 아깝다. 이왕 내친걸음이니, 공길이의 양성적 매력을 강력하게 살려내어 그 삼각관계의 심리적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그래도 관객들은 그 저미도록 고혹적인 눈웃음에 홀려들어 이미 자빠져 버렸다. 감우성의 연기는 좋았지만, 좀더 선이 굵은 배우가 맡았으면 좋았겠다. 연산군은 선이 덜 굵은 배우가 그의 히스테릭한 이중성을 좀더 섬세하고 미묘하게 그려냈어야 했다. 장녹수는 전혀 장녹수답지 못하다. 어디서 그리 맹숭맹숭한 여배우를 데려와서, 천하의 경국지색 장녹수 역을 맡겼는지 도무지 이해되질 않는다.

▲ 공길역의 이준기
이 영화는, [스캔들]처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매우 잘못 그려내고 있으며, 연산군의 폭정을 소재로 삼아 픽션으로 순전히 꾸며낸 이야기이다. 그렇게 꾸며낸 픽션이라는 게 잘못이라는 게 아니다. 그 어떤 시대에나 그 시대를 주름잡는 그 어떤 이념적 색안경이 있기 마련이며, 그 어떤 작품에나 그 작가의 색깔과 스텝이 담겨져 있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그 어떤 시대나 그 어떤 작품은 재해석되기도 하고 리메이크되기도 한다. [취화선] [황산벌] [스캔들] [그때 그 사람] [그림형제] [진주귀걸이 소녀]는 픽션으로 그 시대를 재해석했고, [춘향뎐] [혹성탈출] [위험한 관계] [킹콩]은 상당히 달리 리메이크하였다. 어떤 역사적 사실을 재해석하거나 어떤 원작내용을 리메이크함에, 작가 나름의 개성적인 양념을 적게 치는 작품도 있고 많이 치는 작품도 있다. 문제는 그 작가가 그 시대상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으며, 거기에 작가 나름의 개성적인 양념을 어떻게 치고 어떻게 버무려서, 작가 자신의 내공과 역량을 잘 담아내느냐에 있다. 그렇다고 이런 걸 가늠하는 그 무슨 잣대가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니다.

[황산벌]은 내용이 워낙 황당하니까, 그 내용을 이렇다 저렇다고 따질 게재가 아니었다. 얼마든지 그렇게 만들 수도 있다고 보았으며, 영화의 소재를 이런 방식으로 잡아서 다가갈 수도 있겠다는 '반짝 아이디어'가 좋았다. 영화를 만들어내는 품새도 그리 거슬리지 않았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그냥 재밌게 보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만드는 품새가 거슬린 것은 아니었지만, 막무가내로 황당한 패러디는 아닌지라, 감독이 조선시대의 시대상을 읽어내는 안목 그리고 거기에 감독이 자기의 개성적인 양념을 치고 버무리는 솜씨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내 눈엔, 그 시대상을 읽어내는 안목은 D학점이고, 양념을 치고 버무리는 솜씨는 C+이고, 영화를 재미지게 만들어내는 역량은 B학점이다. 여기에다가 이것저것 좀더 살펴서 대충 잡아 전체적으로 C+쯤 되어 보인다. 우리 관객은 영화를 재미지게 만들어내는 역량만을 감상하기 때문에, 상당히 히트칠 것 같다. 마지막에 하늘로 높이 튕겨 오르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모든 걸 함축하여 가슴 뭉클한 감흥을 주었다.

B+쯤은 되는 영화가, 자주 히트치는 세상을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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