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이 광주에 왔다면…
킹콩이 광주에 왔다면…
  • 이정우 기자
  • 승인 2006.0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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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눈]
궁지에 몰린 킹콩이 결전지로 선택한 곳은 높이가 무려 301m에 달하는 뉴욕의 랜드마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었다. 그저 멋있게 보일 요량으로 영화감독이 킹콩을 그곳으로 올려 보낸 것은 아니다. 자연의 거침없는 힘으로 상징되는 킹콩이 인류문명의 첨단 위에서 포효하는 장면은 자연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연출해 낸다. 감독의 의도가 여기에 있었다.

철저하게 설계되어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99% 안전하다는 ‘패닉룸’에서 조디포스터와 그녀의 딸은 죽을 뻔하다 살아났다. 안전하다는 그 특성 때문에 외부침입이 오히려 쉬워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마침내 조디포스터는 안전을 위해 다시금 ‘고전적인’ 집을 찾아야 했다. 딸과 함께 새로운 집을 고르는 장소는 뉴욕의 또 다른 랜드마크인 센트럴파크였다. 녹색공원으로서 센트럴파크는 철저하게 기계문명으로 설계된 ‘패닉룸’과 대비된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센트럴파크, 뉴욕의 두 랜드마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어야 할까, 센트럴파크여야 할까.
옛 도청 자리에 518m짜리 상징물을 세우자는 주장, 혹은 보여지는 랜드마크로 기능할 수 있는, 지상에 우뚝 선 건축물을 지어야 한다는 문제제기는 모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염두에 둔 듯 하다.

지하형 구조, 녹색지붕과 공간 등 당선작의 기본이념에 호의적인 입장을 내비친 이들의 생각은 센트럴파크의 기능을 지향한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유념해야 할 사실은 지금 서울의 랜드마크는 ‘63빌딩’이 아니라 ‘청계천’이라는 점이다.(청계천이 생태환경과 별 상관없다는 점은 논외로 한다) 미인의 기준이 그렇듯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기호(嗜好) 또한 바뀌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바뀜은 시대정신의 이동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인가, 센트럴파크인가.

센트럴파크=사랑,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싸움 상징화한 '킹콩'

아시아문화전당 당선작은 센트럴파크가 갖고 있는 쉼터, 허파로서의 역할과 보통의 빌딩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적 기능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공존하기 힘든 두 가치를 ‘지하형’이라는 구조를 통해 접목시킨 것이다. 잃은 것은 마천루요, 얻은 것은 그 나머지 다이다. 그런데 일부 인사들이 마천루를 잃었다고 아우성이다. 언제부터 우리에게 마천루가 그토록 중요했던 것일까.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70여년 전에 완공되었다. 그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빌딩은 뉴욕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었다.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 건물보다 높은 건물들은 세계 곳곳에 수두룩하다.

높이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멋’을 요구한다, 는 반론이 나올 법하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멋있게 보이는 것은, 그 건물이 ‘오직 그곳’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져야할 것은 과연 아시아문화전당 당선작이 ‘오직 광주’에만 존재하는 구조물인가, 이다. 지상, 지하가 판단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문화중심도시 광주의 전략은 사랑인가, 싸움인가

킹콩이 사랑하는(?) 여인과 한때나마 즐겁게 놀았던 곳은 센트럴파크였다. 군인들이 공격하자 킹콩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자리를 옮겨 전투를 벌인다. 뉴욕의 두 랜드마크 중 하나는 사랑으로, 다른 하나는 싸움으로 설정한 감독의 성찰이 절묘하다.

킹콩이 광주에 왔다면 옛 도청 본관 건물을 딛고 펄쩍 뛰어 무등산으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두 곳이 광주의 '랜드마크'이기도 하거니와 녀석에게 중요했던 것은 ‘사랑’이었지 ‘싸움’이 아니었다.

문화중심도시 광주의 전략은 싸움인가, 사랑인가. 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만의 패닉룸이어야 하는가, 대한민국의, 혹은 아시아의 센트럴파크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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