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 [태풍]을 헤치고 우렁차게 포효하다!
[킹콩], [태풍]을 헤치고 우렁차게 포효하다!
  • 김영주
  • 승인 2005.12.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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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보는세상]킹콩 , 태풍
▲ 태풍
[태풍]과 [킹콩]이 함께 상영되었다. 둘 다 기대가 자못 컸던지라, 두 번씩 보기로 작정했다. 한 달음에 달려갔다. [킹콩] 엄청났다. 어지럽고 숨 막혔다. 연거푸 두 번 보았다. 그 감동을 잠재우지 못한 채, 곧바로 [태풍]을 보았다. 별로였다. 지루하기까지 했다. 바로 앞서 본 킹콩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다. [친구]에서 싸늘하게 우울한 모습을 빼어나게 보여준 장동건이, 여기선 아무 때나 눈에다 힘만 주었다. 자기가 거물급 스타라는 걸 의식하는 건지 영화의 스케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건지, 연기가 자연스럽지 못했다. [태극기 ]의 어색함을 벗지 못했다. 난 원래 이정재의 연기를 그리 높이 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도 항상 그대로 고만고만하다. 이미연은 자기 몫을 겨우 겨우 채워내느라 힘들어한다. 영화 전체가 거대한 몸뚱이를 가누지 못하고 어그적버그적거렸다. [친구]의 서늘한 예리함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친구]를 만들었다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곽경택 감독에게 실망했다. 두 번 보지 않았다. 그가 여기저기서 했던 인터뷰를 이제 돌이켜 보니, 그도 이 작품이 실패라는 걸 감지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마저도 변명하고 싶어 하는 허세스런 제스추어였겠다. 스스로 인정하시라. 그리고 그 놈의 냄비여론이 뭇매를 때리더라도, 주저앉지 않고 다시 굳건히 일어서길 바란다. [친구]는 진짜 좋았고, [챔피언]과 [똥개]도 괜찮았다.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제왕]은 환타지 블록버스터론 손색이 없었지만, 메시지가 유치하고 스토리나 영화진행이 지루했다. 그러나 [킹콩]은 이런 유치함이나 지루함이 없다. 게다가 [반지제왕]은 방대한 픽션이라는 허울을 벗지 못하지만, [킹콩]은 거대한 픽션이라는 허울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실감난다. 그래선 난 [반지제왕]보다 [킹콩]이 훨씬 낫다. 특히 킹콩과 공룡의 싸움 그리고 뉴욕에서 킹콩의 난동은 숨 막힐 정도로 엄청나고 리얼하다. [쥬라기 공원]에서 실감나는 공룡과 그 액션의 첫 경험으로 받은 그 엄청난 충격을 어찌 잊으랴마는, 그게 주로 인간과의 싸움임에 반하여, [킹콩]은 킹콩과 공룡의 싸움이기에 그 맛이 사뭇 또 달랐다. 괴물들끼리 부서지듯이 부딪히며 짓이기고 찢어발기는 강렬한 파워풀. 더 말하면 잔소리다. 가히 장쾌하다. 영화관에서 보지 않는다면 후회할 영화이다.

▲ 킹콩
여주인공 나오미 왓츠는 처음엔 개성적인 매력포인트가 보이지 않고 마네킹처럼 그저 이쁜이로만 보여 조금 허전했다. 연기도 써억 좋아 보이지 않은 듯하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기품있는 순정미가 우러나면서 캐릭터를 잘 살려내어 점점 개성적인 매력을 발산하였다. 그게 무지막지하게 생겨먹은 킹콩의 콩알눈에도 남달라 보였던 모양이다. 그의 손안에 잡힌 뉴욕의 그 수많은 금발미녀들을 동댕이치며 그녀만을 찾아 울부짖다가, 마침내 어두운 도시 그늘에 가린 그녀를 찾아내는 걸 보면.( 농반진반 ^.^;; ) 남주인공은 킹콩의 사랑 라이벌으론 [캔디]의 테리우스처럼 너무나도 가냘프고 여렸다. 피터 잭슨이 일부러 그렇게 순정만화 남자주인공 같은 사람을 골랐을까? 영화 안에서 영화감독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미묘하게 독특하다. 혹시 피터 잭슨이 블록버스터의 돈벌이에 매달린 자신의 모습을 시니컬하게 반성하며 그려본 게 아닐까?

처음 시작 10여분, 1929년 겨울에 혹독하게 몰아친 ‘대공황’의 다양한 사회상을 그려내는 솜씨가 결코 평범치 않다. 거기에서 난 그가 단순히 블록버스터에 매달리는 흥행감독이 아닌 걸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가 뉴질랜드를 작업장으로 택한 것도 범상치 않아 보이기도 하다. 그 자신이 바로 이 세상을 한 바탕 휘저어버리려는 큰 야망을 간직하고서 뉴질랜드 숲속에서 쩌렁쩌렁 포효하는 킹콩인지도 모르겠다. 오바했나? 아무튼 앞으로 그를 유심히 지켜보아야겠다. 그가 흥행꾼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재주만 뛰어난 게 아니라, [반지제왕]같은 오락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은 뜻밖의 감성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로 ... .

그래도 서운한 점이 조금 있다. 긴목공룡이 골짜기로 몰려 도망치는 장면에서부터 킹콩과 공룡의 싸우는 장면이 참말로 엄청나긴 하지만, 좀더 간결 화끈 확실 강력하게 부딪히고 물어뜯고 찢어발기고 짓이기며 훨씬 개운하고 강렬하게 만들 수 있었다. 자질구레하게 좀 유치한 액션장면은 차라리 잘라 없애는 게 더 나았을텐데 ... . 끝자락에 킹콩이 엠파이어 빌딩 꼭대기에서 쓸쓸히 처량하게 떨어지는 장면이 너무 허전하다. 나라면, 킹콩이 빌딩꼭대기에서 떨어지기 직전에 온 몸이 터지도록 포효하며 뛰어올라 전투비행기를 낚아채어 짓부수면서 최후의 죽음을 장렬하고도 처량하게 추락하도록 만들었겠다. 마지막 장면도 군더더기를 없애버리고 간결하게 상징적이었어야 했다.

그 동안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가 우리 영화에 그리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지는 일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한다. [킹콩], [태풍]을 헤치고 우렁차게 포효하다!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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