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시절에 ‘그림 동화집’을 보면서, 난 그게 그-림이 많이 나오는 동화책인 줄 알았다. 그-림이 그다지 많지도 않음서 ‘그-림 동화집’이라고 했다고 투덜댔다. 그런데 그게 그-림이 많아서 ‘그-림 동화집’이 아니라, 독일사람 Grimm이라는 두 형제가 지은 ‘Grimm동화집’이라는 걸 대학시절에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그림형제가 주인공이라는 [그림형제]는, 그들의 전기영화가 아니라, 그림형제와 그 시대를 소재로 한 픽션이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난 ‘모니카 벨루캄의 화려하게 요염한 자태에 홀랑 빠져 들어갔다. [말레나]에선 모니카의 퇴폐적 매력을 슬쩍 훔쳐 보긴 했지만 그 짙은 분내음에 제대로 적셔들지 못해 못내 서운했다.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섬뜩한 심리공포영화는, 영화 자체의 개성이 워낙 극렬하여 제대로 숨을 쉬기가 힘들어서, 모니카의 퇴폐미를 차분하게 음미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나 [매트릭스]를 비롯한 몇몇 영화는 모니카의 매력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땜빵에 지나지 않았다. 이 영화의 홍보물로 보아선 그 동안 모니카에게 맺힌 갈증을 풀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렇질 못했다. 갈증만 더 했다.
그림형제는 중세 봉건사회를 상징하는 어둡고 음침한 숲 속에 사는 마녀를 영웅적으로 무찔러서, 마녀의 마법에 신음하는 마을사람들에게 계몽의 빛Enlightenment을 비추어준다. 여기에는 서양문화의 뿌리에 박힌 선과 악의 극단적 대립으로 ‘자기 순결성’을 증명하려는 ‘마녀사냥’이 깔려 있다. 근대의 개신교와 중세의 천주교(나아가서 서양종교에 대한 다른 종교) · 서유럽과 동유럽(나아가서 서양의 동양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문화적 적대감을 모태로 삼아, 빛과 어둠 · 남자와 여자 · 계몽과 마법(이성과 감성) · 마을과 숲(문명과 자연)이라는 상징조작으로 근대 문명Civilization의 자기집착La' affection을 깊이 숨기고 '우리의 정신'을 장악하려고 세뇌작업한다. 그렇게 서양 근대문명의 '정신적 꼭두각시'를 만들어낸다. 예술은 그 강력한 도구이다.
[타잔]이 아프리카문화를 멸시하고, [인디아나 존스]가 아시아문화를 멸시하고, [엘도라도]로 인디언문화를 멸시하고, [라이언 킹]이 이슬람문화를 악마로 몰아세우듯이, 서양문화가 자기집착의 나르시즘으로 만들어낸 ‘자기중심적 진리’를 더욱 강조하며, 다른 문화권을 업신여기고 악마화 하면서 자기들의 문화 이데올로기로 계몽해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충만되어 있다. 이게 고스란히 미국 공화당의 정치이념에 배어들어 있다. 미국영화의 열에 아홉은 공화당 쪽에 서 있다. 어디 미국뿐이랴! 어디 영화뿐이랴!
포스트 모던시대에 들어서서 '서양문화 중심주의’에 반성이나 해체를 보여주는 작품이나 제3세계에서 가녀리게 들려오는 치열한 절규말고는, 우리는 지난 100여년동안 서양문명의 도도한 물결에 주눅들고 휘둘리며 짓눌리는 '문화적 열등감'을 오히려 '서양문화 사대주의'로 분칠하고 떡칠하여 단장하였다. 우리는 그렇게해서 우리의 모든 걸 스스로 내동댕이치고, 지금 이 만큼이라도 그들을 흉내라도 낼 수 있게 되었다. 그걸 근대화라고 매달렸고 그걸 발전이라고 믿었으며, 그걸로 이 만큼이나마 살게 되었다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문화적 열등감'이 병적으로 비비꼬여든 '서양문화 사대주의'에 빠져, 그들의 일방적인 문화 이데올로기에 놀림 당하는 '똥돼지'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하고, 풍성한 똥통에서 그저 잔치판에 눈요기로 모니카 벨루치의 퇴폐적 요염함을 적나라하게 즐기지 못했다고 불만이나 터뜨리는
'눈뜬 장님’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