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잘 나가는 극장에서[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이하 [당신이])를 봤다. 본의 아니게 극장을 ‘전세’ 내서 ‘나 홀로’ 봤다. 오전 시간대였다는 탓도 있었겠지만, 주말 저녁 시간이라 해도 관객 수는 크게 불어날 것 같지 않았다. 재미없는 영화였다.
[당신이]는 8년 전 세상에 나온 프랑스 영화 [라빠르망]의 할리우드 버전이다. [라빠르망]을 수작으로 꼽는데 동의하지 않는 영화팬은 드물다. 그 수작을 할리우드는 어떻게 ‘재처리’했을까, 궁금했다.
따지고 보면 궁금할 것도 없었다. 유럽(또는 일본)의 수작을 할리우드가 망쳐 놓은 사례는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틴기어의 귀향], [니키타]가 [써머스비],[니나]로 리메이크 됐었는데, 같은 골격이면서도 분위기와 완성도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당신이]도 그럴 거라고 짐작했고, 틀리지 않았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원작의 탄탄한 연출과 상징장치는 쏙 빠지고, 이야기 구조의 참신성만 커닝한 꼴이었다.
#라빠르망
다시 보기-1
[라빠르망]의 이야기 구조 9할을 빌려다 쓴 [당신이]가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While You Were Falling in Love’라는, 아주 밋밋한 제목을 채택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리 말했듯이 이야기 구조의 참신성만 커닝하고 탄탄한 연출과 상징장치는 애시 당초 포기해버린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할리우드는 언제나 영화상품을 만든다. 영화예술이 아니라.
#할리우드,
그 천박한 문화테러에 대하여
상품을 만드는 일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예술은 좋고, 상품이 나쁜 것 또한 아니다. 문제는 할리우드가 매우 비겁한 방식으로 자기 시스템의 ‘자존심’을 세운다는 데 있다. 이런
식이다.
[레옹]의 영웅 장 르노는 [미션임파서블]에서 쥐새끼를 두려워하는 웃음꺼리 배역을 맡았고, [황비홍]의 영웅 이연걸은 [러셀웨폰]에서 멜 깁슨에게 맞아 죽었으며, 프랑스의 국민배우 격 되는 뱅상 카셀은 [오션스트웰브]에서 조지 클루니에게 거의 완벽하게 속아 우스꽝스러운 도둑이 되어버렸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