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기자의 영화읽기] 형사 Duelist
어떤 이는 빼어난 ‘미장센’이 건질만하다고 말한다. 상황을 설명해 나가는 무대세팅을 아주 잘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형사]의 미장센은 감독 자신의 최고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정사정볼 것 없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다란 계단이 좀더 입체적으로 바뀌었고, 나부끼는 광목천에 색깔이 입혀졌을 뿐이다.
연기도 엉망이다. 하지원과 안성기의 전라도 사투리는, 아마도 웃겨보겠다고 도입한 모양인데 어설프기 짝이 없어 웃음 이전에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강동원의 이미지는 ‘슬픈 눈’인데, 바라보고 있으면, 오히려 여기서 웃음이 나온다. 성공하지 못한 이미지 조작은 관객의 조롱을 받기에 딱 좋다.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고 했다. [형사]는 ‘이명세표’에 대한 과욕만 돋보이는 이명세 감독의 영화다. 스타일의 과잉이 스타일의 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오버의 오버의 오버’ 정도라 해야 할까. 인정사정 보지 않고 자기욕심만 잔뜩 부린 꼴이다. 그 욕심의 반의 반만 이야기에 투자했더라면, 혹은 폼을 덜 잡는데 심혈을 기울였더라면, 이처럼 심각하게 관객의 외면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명세 표’에 대한 지나친 과욕
그런 면에서 영화의 시작과 끝에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배치한 점이 흥미롭다. 이야기의 중요성은 나도 안다, 그런데 그 이야기 포기하고 찍고 싶은데로 영화를 한번 찍어 보고 싶었다, 그러니 이야기가 있네 없네 따위의 비판은 하지 말아라, 라는 말을 하기 위해 마련한 감독의 조롱처럼 느껴진다.
그렇더라도 너무했다. 그나마 [형사]가 제시하고 있는 빈곤한 이야기조차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영화 속 배우들이 달리기를 하는데, 도대체 왜 달리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영화는, 하지원이 강동원(혹은 이 반대)에게 반했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야기로도 이미지로도 그 반함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
사랑의 불가해한 속성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영화는 최소한의 설명이나 이미지화의 노력도 없이 그냥 ‘반했다’이다. 그렇게 가정하고 영화를 감상해보자는 투다. 감독에게는 자기 영화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있으므로 ‘그럴 수도 있겠다’.
문제는 둘의 사랑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의 핵심 모티브로서 사랑은 관객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그 사랑에서 비롯되는 나머지 모든 파생물들이 설득력을 상실할 수밖에.
종합하면, [형사]는 관객들이 사랑의 맥락도, 싸움의 긴장도 수용하지 않는 터에 이 둘을 합쳐 ‘사랑하면서도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컨셉을 들이 밀고 있는 판국이다. 시쳇말로 여성 앞에서 ‘군대에서 축구 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꼴이다.
그냥 사랑해도 될 것 같은데 온갖 멋을 부려가며 싸우면서 사랑하고 있는 두 젊은 배우들을 보는 눈은 매우 씁쓸하다. 그 씁쓸함의 제공자가 ‘한국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는 수식어를 단 중견감독 이명세의 작품이라니, 암울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처참한 영화경험은 김성수 감독의 [무사] 이후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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