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동막골]의 대박, 지나치다?
[웰컴 투 동막골]의 대박, 지나치다?
  • 김영주
  • 승인 2005.09.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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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우리나라 영화풍토에서, 외국 영화 히트작이 내 맘에도 히트 치는 건 열에 일곱 여덟인데, 우리 영화 히트작이 내 맘에도 히트 치는 건 열에 두셋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외국 히트작품은 대부분 엄청난 스펙타클 대작이기에 영화관에 가서 보아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임에 반해, 우리 히트작품은 거의가 영화관에서 보나 비디오로 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히트 친 우리 영화를 보려고 아둥바둥하지 않는다. 어떤 이슈가 잡히거나 관심꺼리가 생겼을 때 비디오로 빌려보는 정도이다.( 그렇다고 우리 영화를 무시하는 건 결코 아니다. 대중적으로 히트 친 작품에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

[동막골]의 대박, 지나치다?

▲ 웰컴 투 동막골 이번 [동막골]은 하도 인기가 요란해서 영화관에서 보긴 보았지만, 싫지 않은 그저 그런 정도였다. 비디오로 봐도 암시랑 안한 영화였다. 내 눈썰미가 꼭 옳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 영화에서 히트 치는 작품은 대체로 내 눈엔 C+쯤으로 보인다.( [올드 보이] [스캔들] [살인의 추억] [범죄의 재구성] [말아톤]처럼, 열에 둘쯤은 Bo를 넘기도 한다. ) 일반사람들의 세상을 보는 눈높이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징표이다. 눈높이가 제법 높다는 사람들도 겨우 한 단계 밖에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는 게 아닐까? 이런 정도의 영화가 관객을 200만명이나 300만명을 모은다면 우리나라 영화관객의 분위기로 보아 이해가 되지만, 무려 600만을 넘어섰다고 하기에 이 영화를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600만명은 지나쳐 보인다. 관객과 네티즌들의 입소문이라는 기운이 잘 퍼져 나간 것 같기도 하고, 사소하지만 반짝이는 몇 장면이 관객들의 감성을 콕 찍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경우를 두고,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낸다"고 하는감? 만약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적 감성에 호소하는 "착하게 삽시다"라는 허깨비에 너무 약한 것 같다. 사삭스럽게 여린 건지, 자기집착의 합리화에 매달리는 건지 ... . 물론 이런 점도 곁들여져 있다. 현대사회는 이 세상을 굴려가는 방법의 하나로 끊임없이 '스타탄생'의 신화를 의도적으로 부채질한다. 지금 우리 매스컴의 부채질은 지나치다. 지나친 부채질은 눈앞의 곶감에 눈이 멀어 기둥뿌리까지 말아먹어버리는 길로 들어서게 한다. 열에 일곱 여덟에서 열에 다섯쯤으로 줄어들기를 바란다. 그리고 Bo나 B+쯤 되어야 히트를 치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A급 영화가 대중적으로 히트 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건 지나친 욕심이리라!( 물론 A급인 채 똥폼 잡지만, 실은 죽고 밥도 아닌 C급인 영화도 많다. ) 그래도 '히트의 이유'는 있다. [동막골]은 ‘착한 영화’이다. [집으로] [말아톤]처럼 착한 영화가 틈틈이 크게 히트 친다. 이런 영화는 모두 저 멀리서 아련하게 착하다. 그 밑바닥에 짙은 슬픔이 깔려 있기에 더욱 아련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모로 보나 결코 착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렇게 아련하게 착한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얼까? 세상이 하도 메마르고 냉혹하게 몰아치니까 영화에서나마 잠시 위로를 찾는 걸까? 그럴 법하다.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매혹이,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환상으로 실감나게 빨아들이는 착각이다. 어느 한 구석도 빼지 않고 패거리 짜고 아웅다웅하는 다툼질뿐인데, 극렬한 적대감으로 가득찬 전쟁터에서 국군 인민군 미군이 서로 평화롭게 손잡고 어울리는 모습이 얼마나 그립고 목마른 환상인가! 동막골 사람들도 착하기 그지없고, 알고보니 국군 인민군 미군도 그지없이 착한 사람이었다. 이 착한 사람들의 틈새를 비집고, 마을 소녀와 소년병이 깊은 골짜기 바위틈에 숨어서 애틋한 사랑을 더욱 맑고 아련하게 피워낸다. ▲ 웰컴 투 동막골
게다가 풋풋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살벌한 전쟁터에서 몸과 맘이 처절하게 생채기진 군인들과 깊은 산골의 순박한 삶에 젖어 세상물정에 까막눈인 깡촌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갖은 엇박자 에피소드. 이 세상이 허접 웃음이나 거짓 웃음을 강요하기에, 이런 깡촌에서 벌어지는 그런 순박한 웃음이 그리운 걸까? 순풍산부인과나 웃찾사 또는 [몽정기]의 천방지축이나 뽀빠이 이상룡의 야한 개그가 주는 웃음하고는 노는 물이 다르다. 훈훈하고 따뜻하다. 여기에 이름 없는 병사들이 동막골을 대규모 융단폭격에서 구해내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마치 착하고 정의로운 다윗이 무지막지하게 우악스런 골리앗을 맞서 싸우는 모습처럼 의로웠다.

 실망스럽진 않아도 안타깝다.

시나리오가 참 좋은 골격을 가지고 있다. 소년병에게 비치드는 표정들이 참 인상적이었고, 임하룡이 편안하게 안겨 들어왔다. 마을사람들이 보여주는 표정 몸짓 사투리도 좋았다. 그런데 나머진 대충 괜찮은 듯하지만, 왠지 영화에 빨려들질 못하고 겉돌았다. 강혜정이 ‘실성한 소녀’의 연기를 못한 건 아니지만, 그녀의 마스크가 주는 바탕이미지가 실성한 모습을 담아내기엔 너무 동떨어져 있는데다가 생긋이 웃는 얼굴에 가지런하게 드러난 새하얀 이가 여지없이 반듯하고 단정했다. 다른 영화에서 만난 강혜정이 거침없이 당돌하고 똘똘해 보여서일까? 아니다. 분명코 그녀의 얼굴 이미지는 그렇게 천진스럽게 실성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기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꽃잎]에서 이정현과 [말아톤]에서 조승우는 참 잘 어울렸는데 ... .

영화가 전체적으로 단단하지 못하고 헐거웠다. 이 영화에 앞서 말한 매력들이 깔려있음에도, 쑤욱 빨려들지 못하고 멀찌감치 바라만 보았다. 나에겐 매갑시 “우리 착하게 삽시다”며 훈계하고 촉구하는 것 같았고, “원래 우리는 이렇게 백의민족으로 착하게 사는데, 사상과 문명이 우릴 갈라놓고 개지랄했답니다”며 민초들은 순결하다는 '막연한 도덕심'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풋풋한 웃음도 애써서 만들어낸 웃음꺼리처럼 자연스럽지 못했고, 마을을 구하려는 고군분투에도 “이 마을 암시랑 않고 무사하겠구나!”를 뻔히 짐작하게 했다.

우리 영화는 대체로 시나리오가 아주 약하다. 그런데 이 영환 좋은 시나리오 골격에도 불구하고 그 살집을 단단하고 꼼꼼하게 채우지 못했다. 감독의 역량이 낮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공이 깊고 단단하질 못하고 외공도 어수룩하다. 다른 감독을 생각해 보았다. 봉준호 감독의 [프란더즈 개]가 떠올랐다. 그가 만들었다면 거의 [이웃집 토토로]에 가까운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실망스런 영화는 아니지만, 욕심 부리자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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