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영화풍토에서, 외국 영화 히트작이 내 맘에도 히트 치는 건 열에 일곱 여덟인데, 우리 영화 히트작이 내 맘에도 히트 치는 건 열에 두셋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외국 히트작품은 대부분 엄청난 스펙타클 대작이기에 영화관에 가서 보아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임에 반해, 우리 히트작품은 거의가 영화관에서 보나 비디오로 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히트 친 우리 영화를 보려고 아둥바둥하지 않는다. 어떤 이슈가 잡히거나 관심꺼리가 생겼을 때 비디오로 빌려보는 정도이다.( 그렇다고 우리 영화를 무시하는 건 결코 아니다. 대중적으로 히트 친 작품에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
[동막골]의 대박,
지나치다?
게다가 풋풋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살벌한 전쟁터에서 몸과 맘이 처절하게 생채기진 군인들과 깊은 산골의 순박한 삶에 젖어 세상물정에 까막눈인 깡촌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갖은 엇박자 에피소드. 이 세상이 허접 웃음이나 거짓 웃음을 강요하기에, 이런 깡촌에서 벌어지는 그런 순박한 웃음이 그리운 걸까? 순풍산부인과나 웃찾사 또는 [몽정기]의 천방지축이나 뽀빠이 이상룡의 야한 개그가 주는 웃음하고는 노는 물이 다르다. 훈훈하고 따뜻하다. 여기에 이름 없는 병사들이 동막골을 대규모 융단폭격에서 구해내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마치 착하고 정의로운 다윗이 무지막지하게 우악스런 골리앗을 맞서 싸우는 모습처럼 의로웠다.
실망스럽진 않아도
안타깝다.
시나리오가 참 좋은 골격을 가지고 있다. 소년병에게 비치드는 표정들이 참 인상적이었고, 임하룡이 편안하게 안겨 들어왔다. 마을사람들이 보여주는 표정 몸짓 사투리도 좋았다. 그런데 나머진 대충 괜찮은 듯하지만, 왠지 영화에 빨려들질 못하고 겉돌았다. 강혜정이 ‘실성한 소녀’의 연기를 못한 건 아니지만, 그녀의 마스크가 주는 바탕이미지가 실성한 모습을 담아내기엔 너무 동떨어져 있는데다가 생긋이 웃는 얼굴에 가지런하게 드러난 새하얀 이가 여지없이 반듯하고 단정했다. 다른 영화에서 만난 강혜정이 거침없이 당돌하고 똘똘해 보여서일까? 아니다. 분명코 그녀의 얼굴 이미지는 그렇게 천진스럽게 실성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기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꽃잎]에서 이정현과 [말아톤]에서 조승우는 참 잘 어울렸는데 ... .
영화가 전체적으로 단단하지 못하고 헐거웠다. 이 영화에 앞서 말한 매력들이 깔려있음에도, 쑤욱 빨려들지 못하고 멀찌감치 바라만 보았다. 나에겐 매갑시 “우리 착하게 삽시다”며 훈계하고 촉구하는 것 같았고, “원래 우리는 이렇게 백의민족으로 착하게 사는데, 사상과 문명이 우릴 갈라놓고 개지랄했답니다”며 민초들은 순결하다는 '막연한 도덕심'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풋풋한 웃음도 애써서 만들어낸 웃음꺼리처럼 자연스럽지 못했고, 마을을 구하려는 고군분투에도 “이 마을 암시랑 않고 무사하겠구나!”를 뻔히 짐작하게 했다.
우리 영화는 대체로 시나리오가 아주 약하다. 그런데 이 영환 좋은 시나리오 골격에도 불구하고 그 살집을 단단하고 꼼꼼하게 채우지 못했다. 감독의 역량이 낮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공이 깊고 단단하질 못하고 외공도 어수룩하다. 다른 감독을 생각해 보았다. 봉준호 감독의 [프란더즈 개]가 떠올랐다. 그가 만들었다면 거의 [이웃집 토토로]에 가까운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실망스런 영화는 아니지만, 욕심 부리자면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