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는 ‘망국적’이라는 수식어를 달기 마련인데 까닭은 합리적 선택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대 민주당의 양당 구조가 단단했던 지난 16대 총선에서 어지간한 비리정치인이더라도 한나라당 소속이면 영남에서, 민주당 소속이면 호남에서 무리 없이 당선된 예를 들 수 있겠다.
지역주의의 연원은, 멀게는 고구려-백제-신라로 나뉘었던 삼국시대에서 찾기도 하고, 가깝게는 박정희 정권의 지역차별적 개발정책에서 그 발생 근거를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적 지역주의의 확고한 정착 시기는 1988년 제13대 총선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이후 DJ, YS, JP 등 야권이 새롭게 시도된 소선거구제를 발판으로 지역을 정당의 존립근거로 삼으면서 지역구도가 강고하게 뿌리내렸다는 주장이다.
1987년 6월항쟁과 그 뒤를 이은 대통령 선거에서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그 때까지의 정치적 과제였던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를 깨뜨렸고, 이에 정당이 자기 존립의 새로운 자원으로서 ‘지역’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2)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전쟁 이후 정당 간 경쟁이 극히 협애한 이념적 스펙트럼 내에서 이루어 짐 → 좁은 이념적 공간 내에서 갈등과 균열을 표현할 수 있는 정치언어와 담론의 범위 축소 → 민주 대 반민주 대립 구도가 거의 유일한 정치적 선택 기준 →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약진 이후 민주 대 반민주 대립 구도 약화, 왜곡됨 → ‘지역’이 목전에 당도한 선거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정치적 자원화 됨."
이 같은 분석은 새로운 정치적 과제가 설정됐을 때 비로소 지역주의가 종말을 고할 수 있다는 논리적 귀결을 낳는다. 지난해 ‘탄핵정국’이 지역주의에 상당한 균열을 주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탄핵이라는 핵폭풍급 정치과제가 유권자들 앞에 등장하자 지역주의가 크게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선거제도와 권력을 ‘교환’하자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이 지역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라는 주장이 나온 배경이다. 선거제도의 개혁이 지역주의 정치 청산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까지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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