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에 대한 피조물의 두려움
조물주에 대한 피조물의 두려움
  • 이정우 기자
  • 승인 2005.08.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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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기자의 영화읽기] 아일랜드

▲ 아일랜드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를 10분 안팎으로 쪼개면 영락없는 뮤직비디오가 된다. 좀 더 잘게 가르면 TV광고를 닮아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는 ‘생각 없이’ 봐도 충분히 재미있다. 그가 만든 [진주만]이나 [더록], [아마겟돈] 같은 영화들은 머리를 텅 비운 채 눈만 뜨고 있어도 볼만한 것이다. 흥행에 성공한 모든 감독들은 자신들의 ‘생각 있음’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어느 때인가 하기 마련이다. 마이클 베이의 경우 [아일랜드]가 그렇다. 그리고 그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아일랜드]는 인간복제 기술과 관련한 나름의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복제를 언급했다고 해서 ‘성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켄슈타인’ 이후 지금까지 선보인 대부분의 미래영화(를 비롯한 예술작품)들은, 그것이 로봇이 됐든 복제인간이든 슈퍼컴퓨터이든지 간에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신기술의 ‘역습’을 두려워했었다. 피조물에 대한 조물주의 두려움이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그 반대로 신기술을 장악한 인간들이 자신들의 ‘생산품’을 대하는 도덕불감증과 잔인성을 진술하고 있다. 기술이 두려운 게 아니고, 그 기술을 장악한 사람, 즉 장사꾼, 권력기관 따위가 진짜 위험하다는 메시지이다. 조물주에 대한 피조물으이 두려움인 셈이다. ▲ 아일랜드
여기까지가 [아일랜드]의 ‘생각 있음’이다. 그 외에는 모두 뮤직비디나 TV광고, 혹은 이전의 미래영화들이 묘사한 상황과 장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영화 흐름 2/3 이후 헐렁하게 늘어져 버리는 이야기 구조는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다.

예컨대 영화는 도입부에서 두 남녀 주인공의 가상결투([애니매트릭스]의 도입 장면처럼)를 선보이는데, 이후 액션을 예비하는 알리바이 장면으로 대부분의 영화들이 흔히 도입하는 기법이다. 그런데도 후반부에서 영화는 결투액션을 전혀 쓰지 않는다.

여주인공 스카렛 요한슨이 관능적인 눈빛만 보여줄 뿐 영화 속 역할을 거의 갖지 못한 점도 이야기 구조 취약성의 한 예다. 남녀 주인공의 로드무비, 도주액션의 얼개를 취하는 영화로서 함량미달일 수밖에 없다. [겟어웨이](1972년 작)나 [트루로맨스]의 여주인공 역할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일랜드]는 극장에서 보기를 권하고 싶은 영화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클론’(복제인간)들은 한 사회에서 차별받는 소수인종, 장애인, 어린이들의 상징으로 읽힐 수 있고, 클론들을 묘사하고 있는 이미지 또한 섬뜩해서 그 같은 상징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한번쯤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아일랜드
덧붙여 말하자면, [아일랜드]는 이전 영화들의 이미지들을 교묘하게 차용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짜증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즐겁다. ‘복제할 수 없는 액션’이라는 식의 거짓 홍보가 짜증을 준다면, 숨은그림처럼 박혀 있는 다른 영화들의 명장면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적지 않다. [아일랜드]는 과거에 상영된 미래영화들의 ‘클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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