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가 [아일랜드]의 ‘생각 있음’이다. 그 외에는 모두 뮤직비디나 TV광고, 혹은 이전의 미래영화들이 묘사한 상황과 장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영화 흐름 2/3 이후 헐렁하게 늘어져 버리는 이야기 구조는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다.
예컨대 영화는 도입부에서 두 남녀 주인공의 가상결투([애니매트릭스]의 도입 장면처럼)를 선보이는데, 이후 액션을 예비하는 알리바이 장면으로 대부분의 영화들이 흔히 도입하는 기법이다. 그런데도 후반부에서 영화는 결투액션을 전혀 쓰지 않는다.
여주인공 스카렛 요한슨이 관능적인 눈빛만 보여줄 뿐 영화 속 역할을 거의 갖지 못한 점도 이야기 구조 취약성의 한 예다. 남녀 주인공의 로드무비, 도주액션의 얼개를 취하는 영화로서 함량미달일 수밖에 없다. [겟어웨이](1972년 작)나 [트루로맨스]의 여주인공 역할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일랜드]는 극장에서 보기를 권하고 싶은 영화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클론’(복제인간)들은 한 사회에서 차별받는 소수인종, 장애인, 어린이들의 상징으로 읽힐 수 있고, 클론들을 묘사하고 있는 이미지 또한 섬뜩해서 그 같은 상징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한번쯤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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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덧붙여 말하자면, [아일랜드]는 이전 영화들의
이미지들을 교묘하게 차용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짜증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즐겁다. ‘복제할 수 없는 액션’이라는 식의 거짓 홍보가 짜증을
준다면, 숨은그림처럼 박혀 있는 다른 영화들의 명장면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적지 않다. [아일랜드]는 과거에 상영된 미래영화들의 ‘클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