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30일 사흘간 소록도 현지에서 벌어진 국가인권위원회의 ‘순회상담’은 한센인들이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동안 한센인에 대한 따뜻한 손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손길들은 민간 차원에 머물렀으며, 시혜나 봉사, 의료적 접근에 한정되어
있었다.
소록도를 찾은 인권위 조영황 위원장은 “질병관리 차원에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의당 누려야 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한센인 여러분을 만나고자
한다”는 말로 순회상담의 의미를 요약했다.
“해방 되고 나서 여자로 혼자 살다 보이 옹색해서 서방을 하나 얻었다 아이가. 병도 다 낫고 해서 경남 사천으로 가서 한 8개월 살았지.
못살겄드라. 소록도가 좋아서 다시 왔다 아이가.”
3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조카들이 있을 뿐, 피붙이 하나 없이 할머니는 혼자다. 남은 소망은 “천국에 가는 것”이라는 구할머니.
“좋은 때가 어데 있고, 나쁜 때가 어데 있겠나. 안 죽은께 사는 거지.” 할머니는 좋은 시절도, 나쁜 시절도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세월 그 자체를 기억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듯 구 할머니집 안마당에는 부추잎과 고구마 순이
파릇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들
병원관계자 200여명, 한센인 700여명 등 1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소록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국립소록도병원과 그
관계자들이 살고 있는 ‘1번지’이고, 나머지 하나는 한센병력을 가진 이들이 살고 있는 ‘2번지’이다.
113만평의 부지에 8개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소록도는 고흥 녹동항에서 직선거리 600m, 뱃길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일반인들이
출입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으며, 실제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소록도를 드나들고 있다. 한센병과 관련 ‘전염’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현대의학이
한센병을 충분히 제압한 데 따른 결과다.
하지만 눈물과 한숨, 한으로 얼룩진 소록도의 ‘역사’는 올곧게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소록도 약사, 아래 상자기사 참조 ) 그들에게 가해진 폭력과
강제노동, 살인 등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진실규명, 명예회복, 배상 등의 작업은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1년
국가배상까지 끝낸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인권위 순회상담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국가기관에 의해 공식적으로 기록된 상담 결과는 국내의 정책과 법률 제정, 그리고 일본정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김명호 소록도 자치회장은 “한센인들의 오랜 숙원사업인 명예회복을 비롯해, 특히 소록도에서 심했던 인권침해의 역사적 진실
또한 밝혀져 ‘이후 싸움’을 준비할 수 있는 터닦기”라고 순회상담의 의미를 설명하고 “병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는
절망감”이라고 한센인들의 아픔을 전했다.
-한센병은 전염병인가 =그렇다. 하지만 격리할 필요가 없는 제3군
전염병이다. 병세가 심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리팜파신 4알을 복용하면 전염력이 상실된다.
-격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 =한센병 치료원칙은 통원치료, 재가치료, 통합치료다. 완치된 사람은 병이 나기 전
상태로 돌아가야 진정한 의미의 완치이고, 지속적인 진료가 필요하다.
-완치됐는데도 지속적이 진료가
필요한가 =한센병은 완치됐다 하더라도 신경손상과 손, 발, 눈의 변형으로 인한 합병증이 생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진료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한센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보통사람들이 가져야 할
생각은 무엇인가 =병으로 인한 고통은 차라리 쉬운데 사회적 고통이 더
심하다는 것이 한센인들의 마음이다. 편견을 갖지 말고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
-소록도가 풀어야 할 숙제는...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병원 중심이고, 한센인들을 관리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제 소록도는 단순한 환자촌이 아니라 식민지, 사회적 약자, 인권 등의 개념들이 얽힌 역사적인 공간이다. 섬 자체가 사람까지를
포함하여 박물관인 것이다. 한센인들의 실버타운이자 인권박물관으로 거듭나는 것이 섬의 가장 아름다운 미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