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의 후예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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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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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여수신문]여수함 함장 김성훈 중령, 고향 찾아

   
▲ 여수함 함장 김성훈 중령 ⓒ새여수신문

"함선의 뱃머리에 서서 고향에 들어서는 순간 말로 표현 못할 뭉클함이 짓누르더군요”

제39회 거북선축제 행사의 일환으로 실시될 해군함정공개행사에 참석코자 여수를 찾은 여수함 함장 김성훈 중령. 그가 20여년만에 맞이한 고향은 그렇게 가슴벅찬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여수 쌍봉초등학교와 여수 종고중학교를 거쳐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해 지난해 12월부터 여수함의 함장을 맡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북한함 작전관, 충무함 전탐관, 수원함 포술장, 고속정 편대장 등을 역임했다.

이번에 여수를 찾은 여수함은 다목적 기능을 가진 초계함으로 대함전, 대공전, 대잠전, 해상경비작전, 선단호송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김 중령이 여수를 찾은 것은 꼬박 19년만이다. "반드시 개선장군이 되어 고향에 돌아오겠노라고 다짐한 것이 20여년의 시간을 훌쩍 보내고 말았네요”라는 김 중령.

김 중령에게 여수는 20여년만에 만난 고향이건만 전혀 낯설지가 않다. 잠시도 고향을 잊지 못한 때문이다. 여수함을 이끌고 있는 것도 그의 고집스런 고향생각 때문이다.

여수출신인 자신이 여수함을 맡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며 상관을 설득하는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김 중령이 여수함을 이끌 수 있었다. 여수함은 17년전 여수시와 자매결연을 맺어 해마다 기념행사를 갖고 상호 지원을 해 오고 있다.

"고향 가는 길에는 꼭 이 놈과 같이 가야겠더라구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김중령이다. “제대로 찾아보지도 못한 고향이기에 더 미안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작으나마 고향과 고향사람들을 위해 꼭 해주고 싶었다”

김 중령이 해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코흘리개 시절 겪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막연한 선망 때문이었다. 김중령의 탯자리는 바로 학동마을이며 임란당시 수군의 군 영터(영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거북선을 건조 했던 선소를 놀이터 삼아 자랐기 때문에 바다와 친해졌다.

김 중령이 해군이 된 배경으로 초등학교 시절 난중일기 촬영장에서부터 시작됐다.
김 중령은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매일 영화 촬영장으로 달려가 촬영을 지켜보고“반드시 이순신 제독과 같은 훌륭한 장수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게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됐다고 어린시절의 꿈을 말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수를 생각하면 먼저 이순신 제독의 전라좌수영과 좌수영민이 떠오르게 되죠” ,“아직까지도 조국을 지켜낸 역사와 천혜의 자연을 고스란히 지켜내고 있는 고향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라며 은근한 고향자랑에 빠져드는 김 중령이다.

이순신 장군의 후예로서 당당하게 고향을 찾은 김 중령. 그동안 한번도 제대로 찾아보지 못한 고향에 대한 미안함이 좀 풀렸을 법도 하건만 이번 고향방문은 시작에 불과하다.

“시작이죠. 여수의 위상을 알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할 것이다”는 김 중령은 “이순신 제독이 그랬던 것처럼 더 큰 함정을 이끌고 대양을 누비며 조국을 지켜내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여수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며 다부진 포부를 밝힌다.

“이름처럼 아름다운 여수는 개척할 수 있는 조건이 무궁무진하다. 조국을 지켜낸 호국정신과 잘 보존된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조국의 중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과거 좌수영민처럼 시민모두가 하나가 되었으면 한다”며 작은 충고 또한 잊지 않는 김 중령이다.

해군 여수함은 5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인에게 함정 공개 행사를 갖게 된다.

/새여수신문 강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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