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서의 순정] 한껏 피어나라, 문근영!
[댄서의 순정] 한껏 피어나라, 문근영!
  • 김영주
  • 승인 2005.05.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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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지금 춤바람이 불고 있다. 60년대엔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으로 춤바람이 불더니, 우리 동네에선 “여자가 춤바람이 나면 자식도 버리고 도망간다”며 수런수런 수군거렸다. 요즈음엔 일본영화 [쉘위댄스]로 춤바람이 불더니, 바로 이웃에서도 “스포츠댄스가 맨나 그렇고 그런 나날들에 산뜻한 생기를 돋운다”며 너도나도 맞장구친다.

"백문百聞이 불여不如 일견一見이라고, 고고춤 백 번이 블루스춤 한 번만 못하다" 여자를 촉촉하게 유혹하는데는 '끈적춤'만한 게 없다는 걸 진작부터 알았으면서도, 그 수군거림으로 박힌 도덕적 멍에 때문에 주저주저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그늘에 가린 사교댄스가 이제 스포츠댄스로 양지바르게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댄스라는 게 뭇남녀를 매혹적인 열정의 도가니에 빠뜨리기에, 그 유혹의 손길을 얼마나 이겨낼지 자못 의심스럽다. 댄스는 참으로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하다. 옛 시절의 고정관념이 이렇게 변해버린 세상을 가로막고 나서지만, 그걸 드러내어 분연히 막아서며 맞서지 못한다.

▲ ⓒ댄서의 순정 영화에서도 매혹적인 춤은 항상 우릴 사로잡는다. 일찌감치 [7인의 신부] [남태평양] [사운드 오브 뮤직]같은 뮤지컬을 재미있어 했고, [웨스트싸이드 스토리] [제 멋대로 살아라] [토요일밤의 열기]를 신나게 즐겼으며, 남녀의 진한 격정을 부르는 [플래쉬 댄스] [더티댄싱] [쉘위댄스]에 촉촉히 빠져들었다. 최근에 [시카고]와 [레이]에 열광한 것도, 그게 단순한 뮤지컬이나 음악영화가 아니라 춤이 맛있게 곁들여졌기 때문이다. 인도영화를 무턱대고 좋아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우리 영화가 많이 좋아졌고 많이 다양해졌지만, 맘에 든 댄스영화는 보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내 우리 영화에 기억해 둘만한 댄스영화 [댄서의 순정]을 만났다. 매스컴에서 자자하게 늘어놓는 띄워주기 허풍에 휘말려들지 않으려고, 그 허접스런 덕담을 일부러 멀리하거나 반 이상 덜어들으려고 애쓴다. ‘문근영’의 천진스럽게 해맑은 표정에 칭찬이 자자하였다. 사진으로 본 문근영은 그저 귀엽고 고운 어린애였다. [어린 신부]가 인기 있었단다. 무시했다. 그런데 ... . 지난 해 연말, 국내의 무슨 영화제 시상식에서 문근영이 내 눈길을 확 잡았다. 그 화려한 자리에 모여든 기라성 같은 미모의 여배우들 사이에서 군계일학으로 돋보였다. 갸웃했다. 참 예쁘긴 하지만, 그렇다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라고까진 할 수 없는데? ... . 그건 해맑은 눈물을 살짝 머금고 발그레 수줍어하는 천진스러움 때문이었다. 짙은 쪽빛 벨벳옷감 위로 사뿐이 내려앉은 반짝이 드레스에 살짝 숨은 듯이 드러난 어깨선과 몸맵시는 성숙한 숙녀티을 보여주면서도 귀여운 소녀티를 해치지 않았다. 이제 막 수줍게 한 잎 터오르는 꽃망울 같다. 문근영에게서 풍겨오는 향기는, 일본 에로만화에서 자주 그려지는 어린 소녀에게 품는 남성들의 느끼한 욕정이라는 이른바 ‘로리타 콤플렉스’하고는 사뭇 멀다. [댄서의 순정] 포스터에, 여린 연분홍빛이 은은히 깔린 중국 치파오옷에 그녀가 살풋이 피워올리는 미소를 보는 순간, 문근영을 달근 보고 싶어졌다. 비디오로 [어린 신부]부터 보았다. 영화제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랐다. 귀엽고 예쁘고 풋풋한 어린애였다. 중고생 팬을 의식한 다분히 소녀용 영화였다. 스토리의 흐름은 삼류였지만, 장면마다 요즘 청소년들의 분방함과 재치를 잘 보여주었고, 문근영의 이미지를 팔아먹는 막무가내 싸구려는 아니었다. 어중간하게 덜 떨어진 똥폼이 없기에, 300만 관객들이 헛물켜지는 않았겠다. ▲ ⓒ댄서의 순정
[댄서의 순정]은 여러 가지로 [어린 신부]보다 더 낫다. 문근영 신드럼은 순풍에 돛을 달아 더욱 두둥실 떠오르겠다. 내용이야 선남선녀의 뻔한 사랑이야기이다. 서운한 점이 없지 않지만 그리 크게 오바하지도 않아 별로 거북살스럽지 않다. 남자 주인공과 조연들도 좋다. 그러나 문근영이 이 영화를 온통 압도한다. 문근영에 의한, 문근영을 위한, 문근영의 영화이다. 문근영이 스스로 빼어난 매력을 보여준 건지, 감독이 문근영의 매력을 잘 살려낸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두 달이 지나면 스무살! 사랑해도 되는 나이!” 중국 조선족의 질박한 사투리가 문근영의 천진스런 순박함을 오롯이 간직해 주면서, 스무살 즈음 성숙한 숙녀와 귀여운 소녀의 사이에 암튼 여운이 어리는 음색도 여간 살갑지 않다. 귀엽고도 발랄한 표정 그리고 영악함마저 느껴지는 순박한 성숙미가 기묘하게 우리를 매혹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건 단연 그녀의 춤솜씨이다. 범상치 않다. 눈매와 시선을 타고 흐르는 표정에 자연스레 끼가 배어들고, 이마에서 목과 어깨 그리고 허리와 히프에서 다리에 이르는 라인과 맵시가 곱게 깍은 밤처럼 매끈하며, 손끝과 발끝의 놀림 그리고 호핑과 터닝도 거침없이 깨끗하다. 마무리 자막과 함께 이어지는 흑백화면의 자투리 댄스가 가장 멋졌다.

한껏 피어나라, 문근영!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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