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춤바람이 불고 있다. 60년대엔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으로 춤바람이 불더니, 우리 동네에선 “여자가 춤바람이 나면 자식도 버리고 도망간다”며 수런수런 수군거렸다. 요즈음엔 일본영화 [쉘위댄스]로 춤바람이 불더니, 바로 이웃에서도 “스포츠댄스가 맨나 그렇고 그런 나날들에 산뜻한 생기를 돋운다”며 너도나도 맞장구친다.
"백문百聞이 불여不如 일견一見이라고, 고고춤 백 번이 블루스춤 한 번만 못하다" 여자를 촉촉하게 유혹하는데는 '끈적춤'만한 게 없다는 걸 진작부터 알았으면서도, 그 수군거림으로 박힌 도덕적 멍에 때문에 주저주저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그늘에 가린 사교댄스가 이제 스포츠댄스로 양지바르게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댄스라는 게 뭇남녀를 매혹적인 열정의 도가니에 빠뜨리기에, 그 유혹의 손길을 얼마나 이겨낼지 자못 의심스럽다. 댄스는 참으로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하다. 옛 시절의 고정관념이 이렇게 변해버린 세상을 가로막고 나서지만, 그걸 드러내어 분연히 막아서며 맞서지 못한다.
[댄서의 순정]은 여러 가지로 [어린 신부]보다 더 낫다. 문근영 신드럼은 순풍에 돛을 달아 더욱 두둥실 떠오르겠다. 내용이야 선남선녀의 뻔한 사랑이야기이다. 서운한 점이 없지 않지만 그리 크게 오바하지도 않아 별로 거북살스럽지 않다. 남자 주인공과 조연들도 좋다. 그러나 문근영이 이 영화를 온통 압도한다. 문근영에 의한, 문근영을 위한, 문근영의 영화이다. 문근영이 스스로 빼어난 매력을 보여준 건지, 감독이 문근영의 매력을 잘 살려낸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두 달이 지나면 스무살! 사랑해도 되는 나이!” 중국 조선족의 질박한 사투리가 문근영의 천진스런 순박함을 오롯이 간직해 주면서, 스무살 즈음 성숙한 숙녀와 귀여운 소녀의 사이에 암튼 여운이 어리는 음색도 여간 살갑지 않다. 귀엽고도 발랄한 표정 그리고 영악함마저 느껴지는 순박한 성숙미가 기묘하게 우리를 매혹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건 단연 그녀의 춤솜씨이다. 범상치 않다. 눈매와 시선을 타고 흐르는 표정에 자연스레 끼가 배어들고, 이마에서 목과 어깨 그리고 허리와 히프에서 다리에 이르는 라인과 맵시가 곱게 깍은 밤처럼 매끈하며, 손끝과 발끝의 놀림 그리고 호핑과 터닝도 거침없이 깨끗하다. 마무리 자막과 함께 이어지는 흑백화면의 자투리 댄스가 가장 멋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