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사람들]과 [제5공화국] 그리고 박정희!
[그 때 그 사람들]과 [제5공화국] 그리고 박정희!
  • 김영주
  • 승인 2005.04.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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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 ⓒmbc 제5공화국 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말만 듣고 자랐다. 3선개헌도 유신헌법도, 내겐 암시랑 하지 않았다. 고등시절 유신반대데모에도 어리둥절했을 따름이다. 대학시절 리영희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서, 전혀 몰랐던 새로운 눈을 뜬 듯한 꿈틀거림이 있었으나, 유신체제의 서슬퍼런 위압에 눌려 숨죽이며 바라만 보았다. 79년은 참 뒤숭숭했다. 울 엄니도 어디서 뭔 말을 들었는지 “4.19 때 멩이로 사람들이 시끌시끌하다." 그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날 아침에 느닷없이 “박정희가 죽었다!"고 했다. 멍~했다.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양림다리 건너 라디오방을 지나치다가, 누군가가 라디오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의 조사내용을 발표하였다. 그가 ‘전두환’이라는 걸, 몇 달이 지나서 ‘봄 같지 않은 어느 봄날’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의 봄 · 오월 광주 · 제5공화국의 깊은 골에 음산하게 깔려드는 검은 땅거미’ 그 이야기의 앞부분을, 지난 주 토요일과 일요일 밤에 문화방송에서 [제5공화국]이라는 드라마가 보여주었다. 사실의 나열에 충실해 보였다. 익히 아는 바이지만 바짝 긴장되었다. 이덕화가 강단지고 독기어린 이미지로 전두환을 연기하는 게 눈길을 잡았다. 띄워주기 홍보냄새가 물씬 풍기는 한겨레신문의 기사로, 뭔가 참신한 접근과 새로운 연출기법을 조금 기대해 보았지만, 흔히 보는 TV드라마 스타일을 그리 벗어나지 못했다. 그 허전함 때문인지, 문득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이 부쩍 궁금해졌다. 임상수 감독을 떨떠름해 하기에 그 영화를 보지 않았었다. 그래도 혹시나 했다. 역시나 였다. [바람난 가족]를 이야기하면서 임상수 감독을 맹렬히 비난하였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 비난은 그대로이다. 그의 영화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그의 영화를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 ⓒ그때 그사람들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나름으로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있으며, 그 무엇이든 100% 선도 없고 100% 악도 없다. 선과 악은 서로 함께 주고 받으면서 돌고 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문제는 그 시대상에 비추어 선과 악의 섞임을 어느 정도로 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이겠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면 그 정도와 해석도 달라진다. ‘박정희의 존재’도 마찬가지이다. 이 좁은 마당에서 그를 해석까지 하긴 힘들다. 내 개인적인 색깔 때문이겠지만, 나는 박정희체제가 좋은 쪽보다도 나쁜 쪽이 훨씬 크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이 땅의 최고 악마인 ‘지역감정’을 국민들의 뼈속에 박아넣고 부채질한 죄가 가장 크다. 그 다음으론 숨겨진 친일과 노골적인 친미로 민족정기를 지나치게 훼손시키면서 의도적으로 ‘저질스런 극우 심성’를 넓고 깊게 심어넣은 것이다.(그 반발로 '격렬한 극좌 심성'을 낳았다. 그 극단적 대립의 심성이 아직도 지금 우리 사회를 많이 얽어매고 있다.) 그리곤 독재정치로 국민을 억누르고 폭행한 것이다. 그게 자기 개인의 권력욕을 채우려고 국민과 나라를 희생시켰기에 더 더욱 나쁘다.

그렇게 해서 우리를 ‘천박하게 배부른 돼지’로 만들었다. 배부른 게 싫다는 것이 아니라, 상류층 중산층 서민층을 가리지 않고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지나치게 저질스런 수렁에 빠뜨려 버렸다는 게 너무 싫다. 새로운 꿈틀거림으로 아직 희망이 없지 않으나,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 인간이 이래도 되는 것인지 많이 힘들다. 내 개인의 과민함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이게 주어진 시대상황에서 어차피 겪어야 할 ‘숙명적 코스’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박정희 개인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흘러온 발자취를 되돌릴 수는 없으나, 여러 가지로 ‘역사의 가정’을 달리 해 보아도, 지금 우리가 보여주는 ‘천박하게 배부른 돼지’의 모습은 박정희 개인과 그 체제에 책임이 많다. 그래서 박정희는‘나쁜 대통령’이다.

[제5공화국]에서 “만약 ...하면, 내가 발포명령을 내리겠다”는 단호한 말이 사실이라면, 오월 광주의 비극은 그 때부터 이미 싹트고 있었다. 나는 몸서리쳤다.

   
▲ 5.16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오른쪽) 아래서 정치군인으로 성장한전두환(왼쪽) 역시 12.12쿠데타를 일으켜 광주의 피를 부르며 권력을 찬탈했다. /국가기록원 사진 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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